갑자기 왜냐고?
나도 종종 꺼내보고 '아니 뭐 이런 오그라드는 글들을 썼담?' 하며 뜨악하는 그저 그런 글들까지도 찾아서 읽고있다는 역시나 절친한 나의 친구 뽈을 위해서다. 베짱이 주제에 키보드 위를 휘적거리는 모양새가 영 아니꼽다 할 수도 있지만, 2000자 내외(몇 자가 될지는 사실 모른다.)의 나의 어줍잖은 글들이 그녀의 소울을 조금은 위안의 뜰로 인도할 수 있다면 까짓-
원체 튼튼한 신체를 갖고 있는 나지만, 2012년 새해에 들어 몸 여기저기가 삐걱거렸다. 몇 달 전 접질렀던 오른 발목은 지금까지도 360도 회전을 할 때면 아릿하고, 지난 달에는 드렁큰 펄슨이 되어 새벽 거리를 활보한 탓에 오른손 새끼손가락의 작은 골절과 작은 열상을 입었으며, 바로 열흘 전엔 내장이 다 뒤틀리는 복통을 느끼며 새벽 내내 토를 하고 흐느끼고를 반복했었다. 그리고 어제는 목감기에 걸렸다. 하하하. 유별난 데 없이 건강한 것이 나름 자랑이라면 자랑이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어디 내놓기에 겸연쩍어져 버렸다. 그래도 가을철 애기바람에도 나부끼는 연약한 나뭇잎 같은 폼새는 아니란 것이 이 와중 다행이라면 얼마나 다행인걸까.
에디슨은 환생하지 않는다. 그가 환생한다고 해도 타임머신을 완벽히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뭘 기대해야 할까? 타임머신이 없는 한 실패했다고 단정 지은 그 과거의 더 지난 과거로 우리는 돌아갈 수 없다. 시간은 그렇게 지났고, 결과는 지금 이렇게 내려진거다. 그래, 여기서 가장 필요한 마음가짐이 무엇이겠는가. "이게 좀 아니었으면 어때." 그렇지?
행복하다.
그릉그릉 잠소리를 내는 Y를 내려다보다 여느 때처럼 그 속눈썹을 살살대며 속으로 이야기한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소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체급식 요리사로 일하고 있는 친오빠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그 새벽에 울리는 쩌렁쩌렁한 자명종 소리에 덩달아 함께 깨면서 처음엔 짜증이 많이 났었다. 베짱이인 내가 그 시간에 깰 필요는 눈꼽만큼도 없으니까. 오빠가 '다녀올게' 라며 현관문을 닫고 출근한다. 금세 고요해진다. 새벽에 혼자 남는 작은 우리집은 실로 고요하다. 그 고요가 바깥 도로의 차소리와 버물어지며 사각거리면 마음이 종종 쓰려진다. 아침 9시까지 회사 사무실로 출근하는 회사원들이 있는가하면, 빈속으로 출근했을 그들의 아침 공복을 깨워주는 회사 식당의 요리사들도 있다. 각자의 위치가 있고, 각자의 역할이 있다. 우리 오빠는 본인의 위치와 역할의 최선을 다하기 위해 매일같이 새벽 4시에 자명종 소리에 깨는 것이다.
이 외에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보낼 것 같은 베짱이의 하루에도 많은 소음들이 삐빅 거린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상쇄할 수 있는 내 마음가짐이 있어 어느 순간이고 "다행이야." 라고 기도할 수 있다.
정처없이 걸어도 괜찮을 다리가 있으니 건강하고, 이게 좀 아니었으면 어떤가 싶은 강한 멘탈이 있고, 다행이라고 안도할 수 있는 행복이 작게라도 맞물려있다면, 그래, 지금 이 때가 그렇게 악질적인 것만은 아니잖아. 신경질적으로 펼쳐 낸 인생의 페이지가 영 와닿지 않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그 페이지가 맞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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