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precipice,

나를 보던 그대 눈빛은

재이와 시옷 2012. 3. 16. 16:01

 

 

며칠 전 Y에게 마음을 담은 사랑의 헌시를 쓴 이후에 부쩍 나의 어린 시절이 자주 생각이 난다. 새침데기였던 배추머리를 한 기집애에게 말괄량이 같던 철부지 어린 날들도 많기는 했지만, 근래에 생각나는 어린 시절이란, 다소 음울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잊어도 될 법한 그런 하루들이 몇 번씩 고개를 꾸역꾸역 들이민다.

 

 

초등학교 앞에는 낡은 돈가스집이 있었다. 수요일이었던 것 같다. 매주 혹은 2주에 한 번 수요일. 교문에는 엄마가 서 있었다. 마르지도 퉁퉁하지도 않은 보통 엄마의 그 체격으로, 중학교 이 후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 같은 원피스 차림의 엄마가 매 주 그렇게 그 곳에 서 있었다. 낡은 실내화 주머니를 팔랑대며 엄마에게로 뛰어가 안기면 호기심에 몇 번 할머니 화장대에서 열어보았던 가루분 냄새가 미미하게 간질거렸다. 

 

 

덜크덩대는 철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 난방이 들어오는 툇마루 형의 식당 자리에 올라가 앉아 포크와 나이프를 쿵쾅대며 가만있어도 나올 돈가스를 향한 구애의 노래를 부르곤 했다. 도톰한 튀김옷 안으로 기름진 고기가 야무지게 박힌 돈가스를 엄마는 일일히 격자무늬로 잘라주었다. 새침데기 배추머리 기집애는 내가 할 수 있다며 나이프를 곧대로 뺏어 들다 소스를 옷에 다 튀겨내곤 엄마에게 귀여운 꾸중을 듣기도 했었다.  케찹으로만 버무려진 양배추 샐러드에 그 때는 그게 뭔지 모르고 맛이 신기하다며 좋아했던 통조림 콩과, 콘옥수수 한 숟갈을 우악스럽게 입 안으로 밀어넣고 바보처럼 웃던 내가 매주 수요일 그 자리에 있었다.

 

 

열 두 살 무렵 부터인 것 같다. 자는 엄마를 가만히 뚫어져라 내려다보면 으레 매번 눈물이 난다.  매해 겨울이면 까슬하게 각질이 일어서는 엄마 손가락 끝을 고슬고슬 쓸어내다 무릎팍 사이로 고개를 처박고 덜 잠긴 수도꼭지마냥 똑똑 떨어뜨려낸 숱한 밤들.

 

 

근래에, 핸드폰 문자메시지 전송법을 익힌 엄마에게서 오는 몇 통의 문자들이 그렇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게, 그 때의 배추머리 못난 기집애가 돈가스를 입으로 밀어넣던 그 모습도 엄마 눈에는 한없이 사랑스러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