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처량히 내리는 비를 오도카니 바라보고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
정말이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 오는 날을 견뎌내지 못하던 스물두 살의 내가 있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풍경엔, 셋이 있었다. 도로를 향해 테이블이 놓였던 자리는 통유리로 되어있던 대학교 근처 커피숍이었다.
아르바이트밖에 모르던 때였다.
학점은 누더기가 되어 헤벌레 입을 벌린 채 멍청한 웃음을 띠고 있는데, 오픈조며 마감조며 가라지 않고 부모의 경제적 지원 없이 학자금 대출을 갚기에 바빴던 스물두 살. 대학생이라는 청춘의 명찰보다 아르바이트생이라는 근로자의 신분이 더 잘 어울리는 꼴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다음 수업을 기다리던 공강 시간.
군대에 갔던 동기가 휴가를 나와 학교를 찾았다. 대학교 친구는 단 두 명이다. 소현이와 곰. 곰의 본명이 무엇인지 생각을 2초 정도 했던걸 보면 그마저도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그때는 친했던 모양인지 우리는 그 커피숍에 셋이 있었다.
창 밖으로는 비가 오고 있었고, 다음 수업시간이 점점 코를 부딪힐 듯 다가오던 때였다.
'집에 갈래'
라고 이야기 했을 거다 분명.
수업 있다면서 무슨 소리야, 비웃음을 흘리려던 곰의 말을 소현이의 말이 낚아채며 자리에 눕혔다.
'저거 비 와서 저래'
그러던 때였다. 비가 전해주는 추상의 중심이 모두 한 점에 가있던 때. 바깥에 있을 수가 없었다. 내 안에서 울리는 소음만으로도 시끄러워 혼절하기 직전의 나였기 때문에 외부의 일상적 소음들을 견디기 버거웠다. 수업을 이어가는 교수님의 말소리는 물론, 동기생들의 시답잖은 농담들, 강의실 밖 복도를 빠르게 뛰어가는 사람들의 무분별한 발소리, 플랫폼으로 들어서는 지하철의 안내방송까지 모두. 어떤 소음들에도 격리되길 원했고 그래야만 했던 때였다.
비가 오면 숨었고, 종일 당신 생각만을 하던 때였다.
그래도 0에 완벽히 가닿지 않던 희망의 분말을 안고 꺼이꺼이 참아낼 수는 있던, 그런 때였다.
당신이 있었거든. 그때는 당신이 세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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