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로 도배된 생활,
이라고 가히 꾸밀 수 있을만큼이지 않나 싶다.
최근 기억에 남는 술값으로의 지출은 도합 203,000원. 심지어 두 번이라는 횟수에 제한된다는 점이 크고도 큰 함정이 되시겠다. 분명 열흘전에 월급을 받았던 기억이 나는데 수중에 왜 3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잔고만 잡히는지도 의문이고.
뽈이 휴가를 나왔다.
엄연히 구분짓자면 8주간의 훈련을 끝으로 부사관으로의 임관식을 치뤄내고 지난 연휴 전 4박 5일의 휴가를 나왔다. 두달 만에 만난 친구는, 웃겼다. 머리가 정말 웃겼다. 준코 18번 방문을 열고 들어서던 뽈의 민망함이 묻은 웃음보다 먼저 두 눈에 가득 들어오던 그 머리. 머리. 머리. 머리!
술을 마시다가도 후악- 하고 머리가 눈에 차버리면 웃음이 자꾸 크게 터져 사레에 걸리곤 했다.
승진턱이라는 대강의 수습으로 1차 계산을 했다. 빌지 앞에서 쭈볏거리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는게 불편하다. 이러다 패망할거다 분명. 하지만 3차에서 마신 보드카와 데낄라의 술값 190,000원을 뽈이 계산했으므로 나는 그나마 남는 장사하지 않았나싶지 아니하다.(돈을 쓴건 쓴거니까)
내일은 회사 창립 13주년이라고 한다.
중견 이상의 기업이라면 창립기념일을 휴무로 지정하는게 보편적인 관례이기는 하나, 나의 회사는 가난한 중소기업이므로, 서울사무실 직원 다같이 점심식사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다른 테이블엔 갈비탕이 일괄적으로 돌아갔지만 나를 포함한 몇명의 직원들은 재빠른 눈치를 타 사장님과 가까운 테이블에 착석, 삼겹살을 주문할 수 있었다. 왜인지 기분이 좋아지신 사장님은 맥주를 주문하셨고, 난 지금 소맥 세 잔을 마시고 취중업무 중에 있다. 오 할렐루야다 정말.
여름에 입던 검정색 반팔티셔츠를 찾기 위해 거실 옷장을 뒤적이다, 몇 번의 펄럭임만으로 갯수가 세어지던 엄마옷이 순간 애달펐다. 보세로 2만원도 되지 않는 티셔츠라도 사올라치면 느이들은 언제나 느이밖에 챙길줄 모르지 않냐며 서운한 기색을 역력히 표내던 엄마에게 미운 마음으로 툴툴거리던 내가 그렇게 못나보일 수가 없었다. 이달 월급이 나오면 화사한 봄옷을 엄마에게 선물해야겠다.
맙소사, 방금 사장님이 바나나 두송이를 사오셨다. 이거먹고 술깨라고 사오셨나보다.
사위가 초록에 잠기고 볕이 투명하리만치 넓게 퍼지며 결을 만들어내는 때가 오면,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다녀와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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