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precipice,/see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The Grand Budapest Hotel, 2014

재이와 시옷 2014. 3. 26. 01:25








국내 개봉 전 이미 사람들의 입을 널쭉널쭉 오르내리며 화제가 되고 있었다. 수상 경력부터 포스터에 등장하는 익숙한 많은 배우들의 모습에 놀라운 캐스팅이라는 찬사들까지 덧붙어가며. 감독은 이미 여러 작품들로 많은 평가를 받아 온 웨스앤더슨. 가만 보니 이 감독 영화 중 내가 본 것은 <문라이즈 킹덤>이 고작이더라. 그 영화를 보고난 후에도 웨스앤더슨 감독의 신념과 성향이 '역시' 잘 드러난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봤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그 말의 뜻을 바로 알 수 있겠더라.


멀리서 대충 휘휘 본다고만 해도 이 영화가 가진 매력에 빠지기는 쉬울 거다. 그만큼 영화는 사랑스럽다. 감독이 진정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의도와는 결을 완전히 달리 한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가 내내 풍기는 이 살그러움, 귀여움, 사랑스러움을 나몰라라 하기엔 너무 치명적이다. 잘린 손가락이 바닥에 나뒹굴고 잘린 머리통이 든 바스켓과 그 머리통이 클로즈업 되더라도 꺅하는 비명이 터지며 소스라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가보다' 하게 된다. 영화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가져가는 싱그러운 듯 살짝 바랜 색감이 그 역할을 힘껏 도와주는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영화 내 공간과 배역들이 풍기는 오라가 내내 그 힘을 뒷받쳐준다. 


액자와 액자와 또 액자의 구성이다. 그 시선에 맞춰 놀랍게도 화면비가 다르더라. 직사각형에서 완만한 직사각형에서 어떤 때엔 정사각형으로. 과거의 과거로 다시 그 과거의 과거로 들어가는 구성을 관객이 그대로 마주하는 화면비를 조정하는 것으로 연출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대개 이런 아이디어는 기획 전 회의에서부터 잘리기 마련인데(ㅎㅎㅎㅎ) 이런 시도를 하다니 이 뚝심보게. 어찌보면 친절하고 어찌보면 불친절한 영화.


구스타프의 삶과 함께 우리들에게 던져 준 질문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해본 것은, 구스타프의 화려하고 해프닝 넘치는 삶에 대한 부러움을 바란 것이 아니라 우리들 각자가 갖고 있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구스타프의 죽음과 함께 이 호텔과 구스타프의 전재산을 상속받게 된 제로는 운영해서 결코 득이 될 것 없는 지금의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을 처분하지 않고 꿋꿋이 가져간다. 종종 낡은 이곳에 들러 과거 구스타프가 머물던 작은 방에서 잠을 자고 옛양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우나에서 목욕을 한다. 다른 재산과 달리 제로에게 이 호텔은 금전적인 것 이상의 의미와 가치가 있었다. 그것을 묻는 것 같았다. '당신의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은(이와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은) 무엇이냐고.'


피곤했었던지, 사실 영화가 시작하고 초반 15분 정도를 고개를 꾸벅꾸벅 떨어뜨리며 졸았다. 이야기를 놓친 것이 조금 분하기도 하여 다시 볼까도 싶은데 에그머니 <캡틴 아메리카: 더 윈터솔져>가 개봉을 하니 결정은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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