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이 무안했다. 실소가 한 번 지나간 자리에 가로로 닫은 입이 남았다.
'가장 추운 일요일.' 몇 달 전 찾아온 시시한 겨울 중 오늘, 가장 추운 하루가 될 것이라 했다. 패딩을 좋아하지 않는 나를 아는 가족과 친구들은 밖에 나가는 것을 극구 만류했고 나는 겁이 조금 났지만 오기를 부렸다.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겼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의 이틀 전, 옷을 미리 꾸려보았다. 시시한 겨울이라고 비아냥대기엔 다소 민망한 다섯 겹의 차림이었다. 거울 속 나는 마치 뭉툭한 지우개 같았다. 검은색 점보 지우개. 의식적으로 마음이 가라앉는 날엔 검은색을 걸친다. 감춰지고 싶고 숨고 싶고 사라지고 싶어서.
찬 바람이 볼을 에는 것 같았다. 머플러로 차마 다 가려지지 못하고 드러난 피부에 바람이 화를 내듯 거칠게 지나갔다. 두 달이 못 되어 찾은 곳이다. 겨울의 복판. 나의 겨울을 의식적으로 지배하는 곳, 곶, 사람, 당신. 바다가 아닌 곳에서 바다를 만난다. 황량한, 서늘한, 당신이라는 나의 마른 바다.
코카콜라 한 캔과 후렌치파이 한 상자를 샀다. 당신이 좋아하던.
안개꽃을 또 잊었다. 해 좋은 날, 처음으로 꽃을 선물하겠다고 눈썹을 움직이며 우쭐거려 보았다. 기다려 달라고. 여기 있는 그 어떤 꽃보다 고운 것을 들고 다시 자리에 서겠다고. 약속했다.
시력이 나쁜 내가 안경을 쓰고 올려다본 당신의 얼굴은 그곳 누군가보다 앳되었다. 어렸고 예뻤다.
무심코, 멈춰있는 당신의 나이를 내가 어느새 훌쩍 뛰어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진 속 당신이 앳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 스물여덟이고 유리 너머의 당신은 스물다섯이니까. 당신이 보지 못한, 담지 못한, 느끼지 못한 한 해, 한 해들을 홀로 보았고 담았고 느꼈다. 시기 질투하는 샐쭉한 얼굴로 꿀밤을 때리러 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앞에 선 당신을 바라볼 수 있다면 참 좋겠지.
뒤통수에 와닿는 출입문을 끄는 소리에 신경을 세웠다. 누군가를 마주칠까 봐. 혹, 그 누군가가 당신의 가족일까 봐. 아마 오전에 다녀가셨을 것이다. 그 짐작과 안도로 몇 년 동안 저녁 다섯 시를 넘겨 이곳을 찾았다. 당신을 올려다보며 말할 수 있는 고작 30분 남짓의 시간. 되돌아오지 않는 질문을 몇 개 했다. 답을 바라지 않는 나의 이야기도 몇 개 했다. 눈물이 볼을 타지 않고 바닥에 떨어지도록 허리를 깊게 숙였다. 멋없는 물감처럼 똑똑 떨어졌다.
'나는 잘 모르겠어. 나는 정말 잘 모르겠어. 어떻게 해도 안 되는 게 있어. 내겐 당신이 참 안 돼. 당신이 안 돼.'
여섯 번째 기일. 아마도 가장 추운 일요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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