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울집두툼이, 나는 각기 다른 이사 날짜를 기억하고 있지만 내멋대로 확정하자면, 2007년 8월 5일에 나는 인천 남구 관교동 언저리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5년이 지나 2012년 7월 29일에 그 자리를 떠났다.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더 이상 이 방에서 이불 휘어감고 잘 수 없겠구나 라고 생각하니 조금, 기분이 이상해지더라. 연약하고 값싼 이동식 가구부터 깨알같은 다이소표 천떼기까지 모두 내 손을 거쳐 다듬어져갔던 자리들이었다. 거실에도, 욕실에도, 옷방에도,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내 방에도, 스리슬쩍 내가 묻어있었다. 한 밤에서 새벽 곁으로 타넘는 시간에 정서와 근육이 몰랑해져 주책맞게 카메라를 들고 내 방 이곳저곳을 기웃기웃.
안녕, 아낌없던 내 공간들 -
퇴근 후 집에 들어와 크게 숨 뱉고 거실을 훑었을 때 내 눈에 들어왔던 내 신발, 너가 손수 빨아 준-
카메라 청소해야겠다. 먼지가 아직도 있네
시간의 때들이 곳곳에 덕지덕지
조명빛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내 생각나서 가져왔다며 무심히 던져준 아빠의 그 우직한 애정이 좋아, 내 방에서 내가 아끼는 물건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취소 전등
사진에 담은 날은 7월 16일이었는데 저 때까지만 해도 나는 겨울이불을 덮고 잤다. 가만히 있으면 덥지 않아 라고 태연할 수 있을만큼 집에서는 더위를 안타는 나라서 좋아하는 꽃이불을 장롱 구석으로 밀어내지 못하고 계속 다리 사이에 끼우고 뒹굴르던 날들. 그리고 공간의 나이만큼 똑같이 늙은 내 취향 전혀 아닌 침대커버까지.
이사하며 순식간에 말끔히 비워진 민둥민둥한 내 방을 보는데 기분이 어딘지 처참하더라. 채워지는 데에는 그리도 애를 먹이며 시간을 엿가락처럼 늘어뜨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으쓱하며 을씨년을 뽐내는 것을 지켜볼 때, 몇 평 되지 않는 이 공간에서 그동안 잘도 베짱이의 일상을 구원하고 있었구나. 우리의 공간이 이삿짐 트럭에 실리는 '짐'들 되어 그렇게 도로를 떠다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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