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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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타임 About Time, 2013

개봉일 시기가 좋았던 것 같다. 현재상영작들 중 꽤나 독보족인 로맨스드라마 장르였고, 를 홍보 카피로 가져가는 등 여러모로 조건이 좋았던 듯 싶다. 편집의 문제인지, 영화 중간 개연성이 조금 허술하다 싶은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갖고가는 사랑스러운 아우라가 그걸 상쇄하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레이첼 맥아담스는 이런 로맨틱한 멜로물 이외에 다른 필모가 무엇이 있었지? 한 번 찾아봐야겠네. 영화를 보고 온 많은 사람들이 남주 외모가 너무 못생겨서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고ㅋㅋㅋㅋ하던데 나는 꽤 귀엽게 봤다. 헤어스타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리숙한 그 느낌을, 그리고 후반부로 가면서 삶과 가정에 책임감을 더해가는 진지함이 표정에 잘 묻어나더라. 그리고 객관적으로 봐도 얼굴이 그렇게 못생긴 것 같..

(precipice;__)/see 2013.12.22

러브레터 Love Letter, 1995

아니라는 것쯤, 미련맞고 꼴사나워보이기까지 한다는 것쯤 모르는게 아니야 공포로 느껴질만큼 지난한 미련의 두께를 제스스로 몰라서 수없던 그밤들을 그렇게 보냈던게 아니야 누구보다 잘 알고있어. 여러번과 여러밤들. 닿지도 않을 안부를 허공에 뿌리고 받을 수 없을 편지글을 꾹꾹 눌러쓰고. 비가 오는 날엔 시린 공기를 걱정하고 만개한 꽃과 색들 앞에선 따뜻함의 소식을 제소리로 전하는 그런, 그런, 그런 바보같은 날들. 왜 나만 이런거냐고. 누구는 일도 잘하고, 연애도 잘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 잘만 사는데 왜 나만 이렇게 괴로운거냐고. 다들, 다 잊고 다 묻고 잘만 사는것 같은데 왜 나만 이런거냐고. 왜 나만 병신같은거냐고. 가장 속상하고 괴로운건 놓아줘 라는 말을 들어야한다는 거야. 이마저도,..

(precipice;__)/see 2013.12.13

사랑하고 애틋한 나의 십일월을

11월에 갖고 있는 애틋한 기억들이 많다. 더위와 추위 모두 잘 타는 극성맞은 성질의 몸뚱이지만 그래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입김이 하얗게 뿜어지는 계절, 겨울이 좋다. 발이 꽁꽁 얼어 걷는 걸음마다 오독오독 발가락이 부숴지는 것 같은 낯설 질감에 놀라다가도, 그 질감을 또 어느 계절에 느낄 수 있나 싶어 양껏 쌓인 눈에 발을 더 들이밀기도 한다. 그렇게, 미련하지만 사랑하는 계절이 겨울이고, 그 시기를 함께 지나가는 11월을 사랑한다. 나의 생일이 있고, 12월엔 당신의 생일도 있고, 해를 넘겨 1월엔 당신의 자리 또한 있다. 몹시 춥고 맹렬한 이 계절에 나의 행복과 절망이 함께 놓여있다. 증오하지만, 더없이 껴안을 수 밖에 없는 계절. 이 때가 기점이었나 싶다. 가죽가방을 잘 못 들겠다. 계절을 타는지 ..

어느 날의 언급

1. 한입도 마시지 못한 우유는 곧장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역시 '초여름 우유가 상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수 있겠다 싶었다. 들여다만 보았어도 상하지 않았을 일이다. 하루만 늦지 않았어도, 보관팩에 있다는 안심만 아녔어도. 2. 나는 내가 말을 잘하고, 재미있고, 합리적이고, 다정한 등등의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넘어서 굳게 확신하며 살아왔는데 언제부터인가 다분히 노력형의 인간이라는 걸, 어딘지 서툰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눈치는 미리 살피고, 다정함은 좋은 사람이 되고싶다는 열망에 기원하며, 외롭지는 않다고 부득부득 우기는 고집 센, 거기다 길은 또 못 찾고 분실의 빈도도 잦는 등의 손이 대략 많이 가는 사람이라는 걸. 이제는 인정하게 되었다. 3. ..

브로큰 서클 The Broken Circle Breakdown, 2013

일요일은 대개 임여사와 두툼이와 함께 식사를 하고 집에서 쉰다. 임여사의 일주일 중 유일한 휴무이기도 하고, 두툼이의 저녁 출근이 대부분인 날인지라 셋이 유일하게 같이 식사를 맞출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금요일 혹은 토요일에 잔뜩 술을 마시고 논 다음엔 바깥 날씨에 전혀 개의치 아니하고, 어떨 땐 일요일 하루 내내 한 발자국도 집을 나가지 않기도 한다. 심지어 잦은 편이다. 오늘도 그와 비슷한 일요일이었다. 새벽에 잠든 만큼, 오후 정확하게는 우리집 점심시간에 일어났다. 비몽사몽 눈꼽 부스러기를 다 떼내지도 못한 새끼망아지같은 꼴을 하고선 밥상 앞에 앉는다. 새벽 목욕을 다녀온 임여사의 얼굴만 반질 반질. 에그머니 놀랄만큼 두부가 잔뜩 들어간 돼지고기김치찜에 소복한 밥 한 공기를 뚝딱하고 셋이 갖는 커..

(precipice;__)/see 2013.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