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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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과도

완전한 이별을 위해선, 감정뿐만이 아니라 그때의 추억과도 이별을 해야 한다는 걸. 당연한 것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 깨닫지 못했던 것처럼 노랫말로 훈계를 들은 후에야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그럴 수 있다는 말과 어쩔 수 없다는 말을 거의 같은 농도로 뱉는 것에 대해. 타인에게 도통 관심을 쏟지 않기도 하면서 어떤 때엔 이 물렁한 고독이 징그러운 촉감이 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있는 이 모양새가. 나를 너무 쉽게 불쌍히 여기고 또 너무 쉽게 용서하고 만다. 나를 끌어안아 준 적은 없지만 뒷걸음질 뒤에 그 마지막 한 발짝까지 몰아세우진 않는다. 그 뒤는 절벽이니까. 소중한 것에 대해 의심을 시작하면 결국 다치는 것은 마음일까 사람일까. 의심이 시작된 순간부터 소중한 것에서 탈락되..

seek; let 2022.08.12

hOMe

노래 한 곡에 마음을 붙들려서 열흘도 더 전부터 노래 제목과 같은 제목의 글을 써야겠다 마치 해내야만 하는 일인 양 다짐까지 했다. 노랫말은 내가 당신에게 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고, 당신이 내게 바랐던 것처럼 들리기도 해서. 나는 당신이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나의 집이 되어주지 않을까 여겼고, 당신은 내게서 우리에게서 집이 만들어질 수 없음을 깨달았던 걸까. 당신의 깨달음이 나의 안일함보다 재빨라서 지어진 적조차 없던 우리의 집은 그렇게 허물어져 버린 걸까. 나는 당신에게 무엇이 되어줬을까. 무엇이 되어준 적이 있을까. 전화 한 통의 수신자도 되어주지 못한 내가, 당신이 편히 몸을 뉘울 집이 되어줄 수 있었을 리가 없지. 빗물이 새 고여 들고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안팎으로 들이쳐도 다리를 접어 몸을 웅..

seek; let 2022.08.08

화요일 19일

내가 타지 않을 여러 대의 버스 뒤에 자리 잡은 144번 버스를 빨간불 신호에 맞춰 차분히 올라탔다. 여느 월요일 또는 화요일처럼 약수역에 가는 경로다. 며칠간 놓친 다른 사람들의 sns 피드와 인터넷상 꼭지 글들을 보며 한참을 간 것 같은데, 도통 익숙한 정류장 이름이 귀에 들어 올 생각을 않는 거. 얼마나 더 가야 하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보니 어? 왜 145번이지. 강남에서 탔는데 왜 나는 압구정에 와있지. 지체하며 모르는 동네를 순회할 순 없기에 일단 내려본다. 백화점 앞이네. 그냥 약수역에 가서 쌀국수랑 밥알을 어제 하루 못 먹었으니 나시고랭도 같이 배부르게 먹을 생각만 했는데 왜 나는 압구정 백화점이지. 301번 버스를 타고 폭이 긴 몇 개의 정거장을 지나 마침내 약수역에 왔다. 공심채 볶음밥..

ordinary; scene 2022.07.19

불행의 동력

감춰진 글들을 다시 읽으면서 생각을 해. 무엇이 쓰고 싶었지,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지, 숨겨놓은 글들을 다시 읽으면서 또 한 번 생각을 해. 왜 감춰두었지, 왜 숨겨두었지, 기억이 되지 못한 꿈을 꾸어서인지, 닫힌 방 문 너머로도 선명한 빗소리 때문인지,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기분이 안 좋은 거야. 억지로 잠을 깨우는 이도 없었고 충분하리만치 자내고 스스로 눈을 떴는데도 불쾌한 감각이 머리 안팎으로 응집해있는 느낌이었어. 어떤 날은 그것들을 업무처럼 아무렇지 않게 해치우다가도 또 어떤 날은 오늘처럼 속수무책으로 K.O패를 당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기분이라고 패배를 선언해. 내게서 만들어진 기분을 내가 다룰 수 없다는 게 나를 멍청한 늪에 빠뜨려. 타인이 다녀간 불행을 짐작하면서 나의 불행에 등..

seek; let 2022.07.13

쫓겨난 꿈

여기서 깨고 싶지 않아 억지로 두 눈을 감고 최대한 몸에 힘을 풀어 본다. 달아나려는 잠의 끝을 억지스레 잡고 양껏 빌면 그마저도 방해가 될까 미약한 바람처럼 끝을 잡는다. 다시 꿈에 들고 싶어서. 이 꿈을 계속 꾸고 싶어서. 처음 2년 정도는 꿈에서 만난 당신이 진짜인 줄 알고 그 앞에 엎드려 엉엉 울었었다. 당신이 죽은 줄 알았다고, 그래서 너무 아프고 너무 힘이 들었는데 내가 사는 세상에서 당신을 잃어 가장 슬픈 사람들은 당신 가족이라는 걸 알아서 나의 슬픔이 건방져 보일까 봐 마음껏 슬퍼하지도 못했다고, 매일매일 나를 견디고 당신이 없다는 현실과 일상을 견디느라 너무 힘이 들었다고. 그렇게 응석을 부리고 억울함을 토로하며 당신 앞에서 많이 울었었다. 불현듯 떠진 눈에 정신을 차려보면 나를 끌어안은..

ordinary; scene 2022.06.25

이해할 수 있는 저녁이 올까

무엇이든 쓰고 싶어서 머릿속 임시 보관함을 열었더니 열망에 비해 황량해서 말들을 골라내기는커녕 머쓱함만 삼켰지 뭐람. 그래도 최근에 예쁜 사진을 찍어서 이것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만을 앞세워 블로그를 띄웠다. 티스토리 사진 업로딩이 너무 구려서 이게 내가 맥북 초보자여서인지 그냥 여기 시스템이 구려서인지 도통 가늠할 수가 없네 라고 적던 중에 드디어 사진 한 장이 업로딩 됐다. 이 녀석들 쓴소리를 들어야 말을 듣는 편인가. '그 집은 애들이 참 착해. 즈이 엄마한테 엄청 잘하잖아.'라는 칭찬을 종종 듣곤 한다. 안 그래도 칭찬에 내성이 없는 나는 대상마저 잘못된 것 같은 상급 칭찬에 몸 둘 바 몰라하며 대답한다. '아유 제가 잘하나요, 저희 집은 아들이 잘해요.' 감사합니다 라는 대답이면 될 것을 그러기엔..

ordinary; scene 2022.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