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내 눈에 띄지 마라. 죽여버릴테니까."
미친년과 개새끼가 오가는 술자리에 반반한 남녀 둘이 으릉으릉 대립하고 서 있었다. 어? 하는 호기심에 한 번. 우연히 다시 마주한 티져엔 같은 사람, 다른 술자리에서 오열하며 보고싶어 죽겠다 끅끅대는 남자와, 침대에 엎드려 엉엉거리는 여자가 있었다. 그 장면을 두 차례 마주하고 결심했다. 보고싶다 저 영화.
별 일이 없는 주말, 두툼이가 물어왔다. 연애의 온도 보러갈래? 심드렁한 얼굴로 '글쎄 별로' 퇴짜를 놓고 몰래 예매했다. 혼자 보고싶었다 이 영화를.
뜨거운 피를 가진 보통의 인간으로 삶을 꾸리면서 쏘쿨을 남발하는 보통의 이십대들의 허세짙은 패기를 남몰래 모욕하고 그안에 함께 둥글려진 나라는 인간은 보지 않으려 했다. 쿨한게 다 뭐야 지질하게 구는 것도 한 방식이고 그게 그 사람의 모든 감정일 수 있어. 라는 허울좋은 말들은 김치찌개의 흔함처럼 툭툭 던져내놓곤 막상 나의 그것들은 소름이 끼쳐 수긍을 외면했던 나란 사람에 대한 자기환멸.
이 환멸을 직면하기 두려워 홍상수의 영화도, 그것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감정선의 영화들도 모두 만족하면서 봐내놓고는 '아휴 지질해 정말. 뭐 저리 솔직해서 사람 진을 빼놓는담' 했던거겠지.
내가 너 있는 쪽으로 갈게.
아니야. 내가 갈게.
그럼 엇갈려. 내가 갈게.
서둘러 움직이는 두 다리. 아니, 네개의 다리.
영화 안에는 수많은 나와 그리고 너가 있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수많은 당신들과 너와 같은 수많은 다른 당신들이 있었지.
동료들이 빠져나간 술 자리. 마음 속으론 스무 고개를 너 댓 번을 더 돌렸을 그 심정을 알 수 있었다. 궁금함이 저 산처럼 높았을 것이고 그에 맞춘 걱정은 해양의 수심처럼 깊었겠지. 그랬겠지만 첫 질문의 자음 하나가 혹시나 빚어낼 칼같은 파장이 두려워 애먼 담배를, 애먼 술잔을 씹어대던 두 남녀의 그 심경이 그 고요가 무척이나 애처로웠다. 속으로는 '으휴 등신들..' 욕을 뱉는데 콧등이 꿍하고 저려왔었으니까.
나는 후회하지 않아. 나는 잘했어. 그 시간들에서 분명 나는 잘했고 열심히 했어. 그래서 후회는 없는 것 같아. 라면서 그렇게 나의 분류된 감정들을 얼러댔지. 괜찮아 너는 잘했잖아 이제와 후회하면 뭘해 끝나버린 마라톤 경기에서 혼자 삐걱대는 무릎을 찔러내 피를 빼며 달려갈 소용 없잖아. 괜찮아 그만하면 됐어.
열렬했고 간절했던 그 모든 진심들이.
영화의 거의 처음, 그득그득 피어나는 이 사랑스러움을 주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입을 맞출 얼굴의 자리를 입술로 요리조리 찾는 이민기의 그 고개짓과, 찡긋하는 눈매로 끓는 웃음을 짓던 김민희의 그 어울림이 지극히도 진짜같은 연애의 장면이 참 예뻤다.
참, 빛을 내는 인간은 아름다운게 맞구나. 하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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