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전체 글 273

잘해주고 싶어, 평생

어떤 다짐처럼 읊조리던 당신의 말이 그 순간 무엇보다 뭉클해서, 매 순간 가혹한 계절에 버려진 것 같다는 자조에 빠지는 내가 그렇게 부끄러웠어.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것 같이 구는 당신을 볼 때마다. 말뿐이 아닌 당신이 내게 보내는 눈짓과 나를 향하는 몸짓을 직접 마주할 때마다. 당신에게 사랑은 뭘까, 라는 생각에 자주 빠져. 내가 내미는 사랑의 진정성을 의심한 적 없고, 내가 가진 크기 역시 자랑스레 여길 법한데도, 당신이 가져서 당신이 내미는 그것들을 두 손으로 받아내다 보면 언제고 멀뚱해져. 이 사랑을 내게 줘도 되는 걸까. 이 사랑을 내가 받아도 되는 걸까. 오래도록, 연애를 하는 몇 년 동안이나 내게 자격을 되물었어. 그러다가 한 2년쯤 됐을까. 우리의 이 사랑이 마땅하다는 결론에 왔어. 평..

ordinary; scene 2022.03.07

이월에 적는 일 월

01. 서른다섯 살이 되었다. 서른다섯이라니 멋진 걸. 02. 아귀찜에 막걸리를 먹었고, 양대창과 청하를 마셨고, 3차 부스터 백신을 맞고 돈가스를 먹었다. 꾸준히 가로수길 테일러 커피에 가서 커피와 파이를 먹었고, 또 꾸준히 배달치킨을 먹었다. 돼지갈비에 막걸리를 마시고, 문어숙회에 고소한 두부전과 청하를 왕창 마셨다. 1월 주말의 우리 먹기록. 03. 스트레스 탓인지, 부스터 백신 탓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시기상 두 가지가 모두 맞물려 나는 1월의 생리를 건너뛰었다. 주기가 규칙적이던 내겐 불편감만 가득하다. 약한 pms 증상을 50일 내내 겪는 기분이다. 엿같다. 04. 만 3년을 채운 에어팟이 이생과의 연을 놓으려는 듯 빌빌거린다. 나의 출근 시간은 도어 투 도어 기준 40분. 6호선 전철을 타고 ..

ordinary; scene 2022.02.01

대여기간은 랜덤입니다

책임감의 총량을 설정할 수 있다면, 근래의 나의 책임감 수치는 (내 기준)적정량을 벗어났고 그에 따라 나는 스트레스에 돌돌 말려 있었다. 분노하고 열을 내며 동시에 피가 차게 식는 경험은 서른한 살 이후로는 거의 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와는 다르게 짜증이 솟으면 정적으로 분노한다. 겉으로 터진다면 내상이 적겠으나 나만 아는 기분으로 안에서 터지니 배출되지 못하고 분노가 고인다. 아무튼 그래서 말 못 할 짜증이 늘었던 1월 한 달이었다. 매장 내 제빙기가 고장났고, 우여곡절 끝에 제빙기 교체를 하였으나 수도 연결이 잘못되고 동절기 대비를 하지 않아 그에 따른 여파로 보일러가 동파됐다. 모두 내 휴무 고작 이틀 새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책임감, 애사심 따위의 것들을 바란 것도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여력을 쏟..

ordinary; scene 2022.02.01

의연한 일상

의연한 일상을 나열하고 싶은데, 키보드 위에 얹은 두 손은 머뭇거리기만 해. 특별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고 평범하기도 한, 이 하루들의 묶음을 두고 머뭇거릴 근거가 없는데 왜 나는 주춤할까. 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으면서도 고이지 않은 관심에 혼자 맘을 매인 건 아닐까. 늘 공개와 비공개의 사이에서 갸웃해. 이곳을 굳이 찾아오는 이가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그게 당신일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혹여나 만에 하나 라도 말이야. 이곳에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주정뱅이처럼 읊고 있는 나를 보면 속이 상할 당신일 것 같아서,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 결국엔 비공개 버튼을 눌러. 그래서, 더, 잘, 있다고 펼쳐놓고 싶은데 쉽지 않네. 이정도면 정말 잘 있는 편인데 말이야.

ordinary; scene 2022.01.29

붙든 미련

어떻게든 놓치고 싶지 않아 혼자 붙들어 멘 미련의 마음이지 않았을까. 지키고 싶은 마음이었어서. 이 마음은, 이 마음과 기억을 함께 꾸린 너라는 사람은, 내가 노력한다면 작아지지 않고, 어디 가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그렇게 지킬 수 있는 존재로 여겨져서. 지키고 싶었다. 움켜 쥔 부실한 주먹 사이로 기억과 추억이 흘러내리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게 아닌지. 그 안에 조금만 남겨져도, 아주 일부만 남더라도 그것이 전부인 양 오해할 수 있었다. 그런 결심이었다.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길 바라는 것도 아님에도 그냥 갖고 있고 싶었다. 0만 되지 않는다면 100인 양 곡해해도 좋았으니까. 허락을 구하지 않은, 일방의 질주였다. 사실, 인정하기 싫었던 거겠지.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

ordinary; scene 2021.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