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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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과 대화하는 스무개의 인터뷰 질문

1. 당신은 스스로 ‘번아웃’ 상태라고 생각하나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제활동을 오래도록 해왔으니까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익히 들어왔고 대강 어떤 상태를 일컫는지도 알고는 있는데, 이 질문에 답하기 앞서 사전에서 검색을 해봤어요. 사전적으론, 뭐가 됐든 '지친 상태'를 얘기하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번아웃에 빠졌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같은 맥락의 일을 근 7년 동안 해왔고 제 의지로 입사와 퇴사 모두 결정한 것도 맞지만, 무기력증과 우울감에 빠져 한 결정은 아니었어요. 한 달 전에 퇴사를 하고 약 반년 정도 합법적인 휴식기를 갖게 되었는데 앞으로, 이제는, 뭘,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었는데 '모르겠다.'라는 대답이 결국엔 '그냥 다 하기 싫다.'의 진짜 얼굴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ordinary; scene 2022.05.10

다시 흘러 고여버린

다른 걸 써야 하지 책임도 의무도 아닌 어떤 강제로. 당신을 적다가도 금세 지우고 또 올려 두었다가도 문질러내고. 그런 낮과 저녁들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텅 빈 화면이야. 아무것도 적지 못하고 쓰지 못한 채 내게로 다시 흘러 고여버린 짙푸른 마음들. 밤과 낮을 가리지 않는 절망은 마치 그늘 한 점 없이 트인 도로 같아. 절망의 온도를 온몸으로 때려 맞고 눈물을 뺏기고 말라죽는 그런 죽음의 도로 한가운데 말이야. 숨을 곳이 겨우 나의 두 손바닥뿐이라는 비린내 나는 진실이 오늘도 지겹지. 막상 숨겨준 적도 없으면서. 내가 나를 안아준 적이 있었나. 등 떠밀어 종용했지. 아파도 된다 그 명분 뒤에 비겁하게 숨어있으라고. 단 한 뼘도 자라지 못한 것 같아. 단 반 폭도 나아가지 못한 것 같아. 너무 예뻤을 거라..

seek; let 2022.05.05

이슈가 있나요, 별일 있나요

이왕이면 우리말을 쓰는 걸 좋아한다. 영어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닌 데다 어렸을 때부터 나름 다독을 했던 터라 단어의 쓰임과 맞춤법에 조금 예민한 편인데, 그래서인지 멀쩡한 우리말 두고 부러 꼬부랑글씨를 써야 할 필요를 못 느낀다. 가장 큰 예로 요즘 외식을 하러 나가면 식당과 카페를 불문하고 왜 죄다 이름들을 영어로 적어놨는지. 시력도 낮고 시야가 좁은 탓에 나조차도 키오스크 사용을 천천히 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 엄마 바깥에 나와서 혼자 주문할 수 있을까? 돈도 있고 혼자 그 시간을 즐길 여유도 있는데 주문을 못해서 시무룩해져 들어오게 되진 않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실제 그랬다는 경우를 주변에서 심심찮게 듣는 편이고. 가급적이면 우리말을 사용했으면 좋겠다. 괜히 뒤틀어 말 같지도 않게 ..

ordinary; scene 2022.04.29

허무의 성

이야기를, 문장을, 글을, 나를 적고 싶은데 어떻게 말을 띄워야 할지 막막해서 지나간 날들의 글들만 괜히 고심 고심 들여다보고 있다. 마감기한을 받은 것도 아니고 돈 받고 글을 쓰는 직업을 가져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이토록 오랫동안 무언가를 썼으면 좋겠다는 갈망을 갖는 것이 너무나 자기변명으로 느껴진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선망은 수차례 했었으나 내 글을 똑바로 읽는 타인의 그 거리가 부끄러워 자랑스레 꺼내보여준 적도 없고 남의 공간에 역 도둑질이라도 하는 양 나의 글을 던져 놓고 괜찮게들 보고 있는 건가 기웃거리기만 하는 것이 몇 해 째인지. 오늘도 여전히 이 블로그의 오래전 글들을 역순으로 읽어오며 10년도 더 된 낡은 활자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쓰지 않고 생각도 않고 있으면서 오늘도 방구..

ordinary; scene 2022.04.18

두 계절을 품었던 삼월을

00. 바람이 많이 불던 이틀이 있었다. 때는 2월의 끄트머리였고 그 사이로 오가던 몇 개의 낱말과 문장들이 카운팅 버튼을 작동시켰다. 내가 참고 견디느라 존재조차 까먹고 있던 그것은 작동이 시작되자 입력된 매뉴얼이라도 있었던 듯 차근차근 실행됐다. 오후의 카페에서 다이어리에 수기로 우선 정리를 하고 밤 러닝을 나가기 전 퇴직서 메일을 발송했다. 수신확인을 하기 전까지 상대의 시간을 가늠하는 게 스스로 괴로울 것 같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달리기를 택한 것인데 그 공백은 대체되지 않고 다음날 회신 때까지 편두통처럼 나를 괴롭혔다. 참고, 견디고, 골몰했던 시간들이 어찌 보면 허무할 만큼 단순하게 매조지어졌다. 만 3년을 거의 채워 일한 직장을 그만두었다. 3월 20일. 마지막 근무였다. 01. 나의 베..

ordinary; scene 2022.04.12

삼월에 적는 이월의 일들

01. 1일인지 2일인지 어어?.. 늘 헷갈려하면서 2일에 미현이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낸다. 그러면 웬일로 기억하냐며 되려 기특해하는 답장을 받지. 맞아 미현이 생일은 2일이었지 맞췄다 으쓱하다가도 내년이 되면 똑같이 헷갈려하다가 문자를 보내겠지. 생일 축하 식사 자리를 여의도 아웃백에서 만들었다. 4월에 출산 예정인 미랑이는 요즘 시기에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아쉽지만 참석할 수 없다고 들었는데, 안내받은 예약석으로 가니 친구들과 미랑이가 함께 앉아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내 생각보다, 또 친구들의 생각보다도 더 나는 많이 놀랐다. 그리고 반가웠다. 예상보다 너무 기뻐하는 나를 보는 미랑이의 표정이 좀 미심쩍어 보였어. 의심을 하더라고?ㅋㅋ 반가워했다고 의심을 받다니. 여느..

ordinary; scene 2022.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