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전체 글 280

무사함으로

미리 밝히자면, 이것은 비용을 대신하는 글이라고. 잊었음에 대한 변명의 비용. 누군가는 별 일이 아니라고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도 할 법한 그런 일인데, 나는 왜 내게 실망하고 속상한지 모를 일이야. 네 생일을, 여느 때처럼 몇 단락의 문자로 길게 축하하던 그 생일을 잊은 것이 나는 좀 의아하고 더불어 서운하네. 너도 아니고 내게 말이지. 겨를이 전혀 없을만큼 일이 바빴다면, 한겨울에 떨어져 우울함으로 정신 끝자락을 붙잡고 있었다면, 관계가 부질없어 손놓고 있었다면, 일 년에 한 번 정도 앓는 열병을 이번 참에 앓았다면, 아무튼, 변명으로 퉁- 쳐질 것들의 가운데에 있었다면 이리 속상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나는 그게 아니었어서 그래. 나는 별 일이 없었거든. 한여름을 벗어나 일하는 매장은 다시 바빠지긴 ..

ordinary; scene 2021.09.22

이토록

당신이 이토록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나 그게 너무 무서운데속상하고 마음 아픈데이러다 어느 날에 사진 없이는 당신 눈코입도 그려내지 못할까 봐 그럼 어떡해 그렇게 되면 어떡해누군가는 잊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한 번도 단 한시도 그런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당신을 잊으려는 생각도 시도도 해본 적이 없어그래서 나는 그렇게 되는 날이 혹여 올까 봐 내가 원치 않던 그날이 언젠가는 꼭 내게 들르게 될까 봐 나는 그게 너무 겁이 나 두려워 무서워당신을 잃을까 봐 또다시 잃을까 봐 무서워그때는 영원일 거잖아 영원히 잃는 거잖아

seek; let 2021.09.09

Interview

당신의 삶에 깊이 남은 인생 작품(책, 영화, 드라마 등)은 무엇인가요? 지금 당신의 삶에서 용기가 없어 주저하고 있는 일들은 무엇인가요? 만약 당신에게 100억이 생긴다면,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요? 다른 사람이 말하는 당신의 가장 큰 매력이나 장점은 무엇이라고 하나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는 무엇이고 어떤 특징이 있나요? **만약 신이 한 가지 질문에 대해 답을 해준다면, 해답을 듣고 싶은 당신의 질문은 무엇인가요? 자살하면 정말 지옥에 가나요. 생(生)이 도무지 견딜 수 없어 선택한 자살이어도 불지옥에 가는 건가요. 스스로 해한 목숨이라도 꽃이 만개한 천국엔 갈 수 없나요. **지금 당신의 삶에서 버려야 할 것, 중단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자기연민, 염세주의, 슬픔전시 지금까지 살면서..

ordinary; scene 2021.09.06

'왜'와 '그래서'

어디서부터 일까. '틀린 부분을 체크하시오' 같은 퀴즈였다면 조금 더 쉬웠을까. 인생은 물음표 투성이인 것 같은데 왜 정답만 모아 놓은 해설지는 눈에 띄지 않는 걸까. 머릿속에 두고도 못 찾는 걸까. 한참을 뒤적거린 것 같은데 손에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애정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사랑받지 못한 유년을 스스로 떠올려야 할까. 가혹하게. 그럼에도 답을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헤집고 헤집어 엉망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럼에도 답을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나는. '미안함이 있어서'라고 했다.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시절을 함께 보냈지 않은가. 일하는 부모 대신 할머니 손에 자란 우리였다. 할머니 손에서, 품 안에서 따뜻하게 자란 장남과 조금 비스듬한 그늘 아래서 품보단 바깥 볕이 더 좋아 괜찮다며 혼자 고..

크기는 상관없으니 깊이로 안아주었으면 하는 바람

술을 많이 마셨다. 무엇이 부족했는지, 간절했는지 두 달의 금주 기간을 스스로 마치며 기다렸다는 듯이 '11월이니까' 라는 명분을 앞세워 이해받지 못할 것이 뻔한데도 아랑곳 않고 술을 많이 마셨다. 다시 잠을 곧게 자지 못하는 시기가 왔다. 아침에도 낮에도 새벽에도 깨어 있고 잠에 드는 불온전한 주기. 어머니와 긴 이별을 한 친구를 안아주고 돌아왔던 날. 먼저 문자를 적어낼 수 없는 나를 읽기라도 한 듯, 저 멀리서 먼저 날아 온 연락. 간지러운 곳을 다 알고 있어 쿡쿡 찌르며 다름없는 온도로 곁에서 장난을 꾸민다. 왜 전화했었어 라는 너의 질문에 '그냥 했겠지 뭐' 어영부영 대답의 끝을 흐리면 그 말이 무어 귀여운지 두 볼을 한 손으로 잡고 누르며 어린아이 얼르 듯한다. 오랜 시간, 오래된 시간으로 쌓..

ordinary; scene 2021.08.16

위로 받으시겠습니까

눈물이 왈칵 쏟아지던 밤이 있었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왜 그랬지 싶은데도 그 밤엔 속절없이 그냥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고개 숙여 물방울을 바닥으로 떨궈내면서도 입 밖으로 비집고 나온 말들이라곤 고작 '슬퍼. 너무 슬퍼.' 뿐이었다. 거의 엉엉 소리에 가깝게 흐느끼며 십여 분을 택시정류장에 앉아 울었다.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다가도 이렇게 슬프면 안 되는 것 같다가도 왜 나는 계속 슬퍼야 하는지가 억울해서 모든 정의되지 않은 마음과 생각들이 한 데 뭉쳐져 눈물로 떨어졌다. 슬퍼서, 마음이 슬퍼서 그렇게 울었다. 몇 년 전일까. 스물 여섯이었나 다섯이었나. 그쯤엔 머쓱하더라도 위로해달라 조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말이 떨어지질 않는다. 나이만 차곡차곡 찼지 나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나이처럼 지..

ordinary; scene 2021.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