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14) 그렇게 그런 일들 35

어쩌면 아주 오래된 결핍이었다고

어쩌면 아주 오래된 결핍이었다고. 나의 이성조차 바로 보지 못했던 어쩌면 진짜 나의 이야기. 술에 취해서인지 뱉어지는 말들은 여과 없었다. 언제라도 터뜨릴 모양이었던지 비엔나소시지의 꼬리처럼 상처로 점철된 고백들이 입에서 쏟아졌다. 이미 얼굴은 눈물과 콧물 범벅. 마음이 예전에 주저앉아버린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무 힘이 들었다고. 너무 힘이 든다고." 나는 처음부터 없는 사람 같아서. 그랬던 것만 같아서. 온갖 시간들이 뭉개지는 것 같았다. 그제야 나는 내가 참으로 불쌍한 인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온전한 동정이 가슴 아팠지만, 비껴갈 수 없는 오랜 세월의 증거였기에 묵묵히 나를 찢어내고 벌건 상처를 그제서야 내보였다. 새까맣게 탄 가슴이 아니라, 단 한 번도 아문 적 없던 어제 난 것만..

올가미

​​​​​​​​​​​​​​​​​​​​​​​​​​​​​​​​​​​​​​​​​​​​​​​​​​​​​​​​​​​​​​​​​​​​​​​​​​​​​​​​​​​​​​​​​​​​​​​​​​​​​​​​​​​​​​​​​​​ 당신은 이미 빠져나가고 없지만 당신이 이미 들어왔던 여기에서 나는 따뜻하다.​ ​​

그렇게 입추(立秋)마저 지나고

잡히지도, 그렇다고 돌아오지도 않을 시간들이 저만치 달아났다. 손아귀에서 용을 쓰고 벗어나 달음질 쳤다기보단, 그냥 멍하니 있다보니 어느새 저기로 훌렁훌렁 가버리곤 꼴 좋다는 듯이 메롱까지 해보이는 그런 얄미운 모양새. 그래 내가 이 세계의 잉여다 젠장. 이 년여를 다닌 회사를 관두고 사개월 가량 실업급여를 받으며 탱자탱자 놀았다. 백 여만원의 실업급여가 세달 동안 계좌에 또박또박 찍혔는데, 학자금대출과 엄마 위해 받아주었던 대출(엄마는 기억을 전혀 못하지만), 소소한 음주가무로 쓴 카드값, 핸드폰요금, 인터넷요금, 교통비, 친구들과 하고 있는 우정 곗돈, 헬스비 등 요렇게 조렇게 하면 그 돈이 딱- 백 여 만원. 실업급여가 바닥나고 임여사의 눈총과 잔소리, 히스테릭을 감당하기 벅찼기에 슬슬 몸 쓸 준비..

지금 여기가 맨 앞

제 스스로도 설명이 쉬이 되지 않는 며칠이 지났다. 짧게는 몇 주일까 길게는 한 절기에 이를까 시간을 이제와 가늠해보려 하니 마땅한 시작점을 꼽지 못하겠다. 인트로부터 정돈되지 않으니 다음 트랙이 말끔할 리 없다. 그럼에도 정신사나운 글과 생각을 굳이 지어내는 이 욕심을 또 막아서지도 못하겠다. 내게 무능력한 나를 본다. '너는 항상 그런 식이야.' 언제나, 항상, 그런 / 등의 수식이 이리 서운한 것인줄 여태 잘 몰랐던 것 같다. 그 말들 앞에 세상 혼자 버려진 듯 덜커덕 주저앉았던걸 보면. 어떤 길을 돌아보아도 속이 까맣게 상해 꾹꾹 눌러온 말들을 쭈뼛쭈뼛 꺼내 놓았는데 돌아온 대답이라는 것이 '그게 그렇게 기분이 나빠?' 였다. 깨달았다. 어떤 방식으로도 나의 상처와 서운함이 상대에게 용인 될 수 ..

입춘(立春) 이었는데

여전히 그리고 꾸준히 찾아 보는 PAPER. 2월 어느 날의 아침. 핸드드립커피와 배. 같이 먹기에 썩 좋은 궁합은 아니다. 경주에 갔을 때. 눈이 하루종일을 지나 닷새동안 내렸다. 눈을 치우러 나갔는데 머물렀던 별장이 워낙 산 중턱에 있던지라 풍경이- 와- 무척 신나서 얼굴에서 동네바보형이 스치고 있지만 정말이지 너무 좋았다. 경주에 다녀와서. 집 앞에 있는 홈플러스에 가서 술 사오는 길. 워낙 집앞이라 나갔다 들어온 차림에서 후디만 겹쳐입고 쭐래쭐래 나이키쓰레빠 신고 갔는데 계산할 때 신분증 검사를. 네? 몇 년 생이냐는 캐셔 직원 분의 말에 너무 놀라(ㅋㅋㅋㅋㅋ) 89년생이요! 저 나이 많아요! 아무래도 화장 지워지고 차림새가 남루해서 그랬나보다. 아 그래도 로또살 걸. 열정이 게으름을 이겼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