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 precipice, 163

1월 26일 강릉 인구해변

기분 탓일 수도 있었겠지만 분명, 공기가 남달랐다고 자부했다. 콧속으로 스미는 바다의 기운이 소래포구의 비릿한 그것과는 완연히 다른 어떤 명쾌함이 있었다. 강원도라 추위와 바람의 강세도 남달랐지만, 밤에 도착해 첫 들이 쉰 강릉역의 숨은 황홀했다. 어깨와 가슴을 잔뜩 열고 숨을 폐로 깊이 밀어넣던 때에, 하늘의 별이 눈에 들어왔다. 좋지 않은 내 시력으로도 가늠되던 무수한 그 갯수와 명명함들. 소리를 꺅 하고 질렀다. 기분이 너무 좋아 강릉역 복판에서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양발에 트램플린이라도 달은냥 떼는 걸음마다 내가 튀어져올랐다. 아침에 보게 될 숙소 앞 해변의 절경을 다짐하며 기대로 계속 뛰는 심장을 다독여 잠자리에 들었다. 이불을 온 몸에 휘어감고 베란다로 나가 입김 내뿜으며 천천히 지켜 본, ..

Moonrise Kingdom 문라이즈킹덤, 2012

포스터와 간단한 시놉만 보고난 후 보고싶어진 영화였다. 어딘지 낌새가 서두르지 않으면 극장에서는 볼 수 없어질 것만 같아 평일 퇴근 후에 부랴부랴 안국역으로 갔다. 아주 오랜만에 찾은 씨네코드선재. 몇 해 전, 처음 이곳을 찾아 갈 적에는 바보같이 길을 뱅뱅 돌았었는데 그 몇 해 동안 나의 길찾기 능력은 꽤나 발달해(뭐 못믿겠지만..) 네이버 지도를 보고 미리 알아가는 이 치밀함! 껄껄 그렇게 단번에 찾아가 을 보았다. 보이스카우트의 공식 왕따 고아 샘 집은 물론 학교에서도 구제불능 취급 수지 소년과 소녀는 첫 눈에 서로에게 반한다. 1년 여 동안 펜팔을 이어오던 둘. 만나기로 한다. 만나서 도망가기로 한다. 둘만의 장소를 찾아. 영화는 매우 사랑스럽다. 웨스앤더슨 감독의 영화가 대개 그러한지는 모르겠지..

⌳ precipice,/see 2013.02.08

다시, 눈이 오던 날

주말 이틀 중 하루는 대개 집에만 있는 경우가 잦다. 늦잠이라고 할 수 없을만큼 하릴없이 잠을 푹 자내고 오후깨쯤 일어나 그저 그런대로 점심을 떼우고 한 마리의 거실 잉여가 된다. 이 날도 그랬던 듯 싶다. 메모리카드 일자를 보니 3일이라고 되어있다. 매거진과 TV 등 멈춰있는 것과 흐르는 것들을 종일 양껏 봐내고 난 후에 거실 전기매트 위에 누워 혼연일체의 시간을 보내던 때. 퇴근 후 돌아온 두툼이가 이야기했다. 눈오는데 그것도 많이. '음?' 트위터 타임라인을 재빠르게 훑으니 중부지방 최고 15cm 대설. 푸근했던 며칠이 질투라도 났던지 입춘(立春) 전 날, 겨울이 떼를 쓰고 있었다. 나 아직 여기 있다고. 포실포실 내리는 눈을 기대하며 카메라를 챙겨 현관으로 뛰었다. 마찬가지로 돌아온 임여사는 쟤가..

⌳ precipice, 2013.02.08

나는야 루팡

나는야 루팡, 월급루팡 오늘 하루 만큼은 월급루팡이 되겠다 호호호 왜? 오늘은 설연휴 전날이니까. 오후 3시 퇴근이라는 공지가 하달되고 난 미리 예상한 듯 가방에서 메모리카드와 리더기를 꺼낸다. 미처 집에서 보정 못한 바다 사진을 보정하기 위해서. 꺄르르르 거실 컴퓨터로 사진 보정을 하고 있으면 임여사는 꼭 묻는다. "거긴 어디야?" 내가 강릉에 다녀온 걸 임여사는 모르므로 집에서는 보정을 할 수가 없다. 당시 외박을 했었는데 임여사에게는 친구들과 인천 을왕리에 다녀왔다고 했다. 임여사에게는 강릉 겨울바다 로망이 있기 때문에 그 로망을 실현시켜주지는 못할 망정 지혼자 바다를 쳐보고(화가 나면 꼭 이리 밉게 말한다) 왔다고 분명히 엄청 서운해 할테니까 점심을 뭘 먹을지 고민을 미리 해야지 호호호

⌳ precipice, 2013.02.08

보고서를 쓰는 중이라 해둡시다.

문득 어떤 사람이 된다는 것에 대해 짧막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는 약간의 열망은 그보다 못한 지금 나의 현실과 나의 못남에서 비롯된 열등의 꽃인걸까 아니면 그저 순수한 작은 열망으로 봐도 무방한걸까. 사무실 내 자리에 앉아서 보는 뷰(view)는 언제나 같다. 똑같이 지겹고 언제나 같은 템포로 업무시간은 지나간다. 오늘은 좀 나만의 템포를 갖는다. 1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경영성과보고회의 때문에 팀장님은 자리를 비우셨고, 내 앞자리에 나란히 앉는 두 대리님은 부산으로 출장을 갔다. 내 옆과 팀장님 사이에 낑겨앉은 이후부터 안색이 그닥 좋지 못한 스물여덟 동기 사원도 외근을 나갔다. 고로, 우리 부서 자리에는 지금 나 혼자있다. 타이핑이 길어지고 있으니 타부서 사람들의 눈동자들이 몇..

⌳ precipice, 2013.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