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ordinary; scene 40

시월을 맺으며

다시 내게 다가오는 하루가 될 뿐인데, 날짜와 숫자에 의미를 조금은 두고서 시월을 맺는 글을 몇 자 적고자 한다. 앨범에 든 사진들을 보며 지난 한 달을 가늠하고 몇 장의 사진들로 월간 일기를 기록할까 했는데, 보정되지 않은 날것들이라 내가 생각하는 시월의 내 모습인 사진 한 장으로 단정 지으려 한다. / 2일의 일요일. 공휴일이 두 번 있었다. 개천절과 한글날. 학생 때도 일개미 때도 카레점장 때도 커피매니저일 때도 빨간날을 빨간날로써 소비해 본 경험이 적은 나는 3년 남짓 고정 데이트 요일이 된 우리의 일요일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 수 있을까만 고심한다. 짧게는 이틀, 월차에는 사흘을 연인과 함께 보내는데 공휴일을 앞두고 강남권 숙소 비용이 뜨악스럽게 뛰어 토요일 밤이 아닌 일요일 한낮의 강남에서 몇..

ordinary; scene 2022.10.31

달리고 걷다 보면

오늘은 10월 8일이다. 코로나로 인해 개최되지 못했던 갖가지 축제들이 서울 곳곳에서 날 좋은 이때를 놓칠 수 없다는 승부욕이라도 보여주듯 앞다투어 열리고 있다. 오늘은 여의도에서 불꽃축제가 있다. 열흘 전부터 인스타그램에선 숨겨진 불꽃 축제 감상 명소들이 피드에 랜덤으로 뜨고(피드에 이미 떠버리는데 어떻게 숨겨진 명소일 수 있을까) 뉴스에선 혼잡할 여의도 도로 사정과 대중교통 이용의 어려움을 내보낸다. 사람들은 공중에서 터지는 불꽃을 맨 눈으로 보기 위해 여의도 일대로 낮부터 몰려들고 있다. 평소보다 일찌감치 일어나 긴 샤워와 샐러드로 식사까지 마친 나도 여의도가 아닌 어딘가로의 외출을 아주 잠시간 고민도 했지만, 오늘 서울의 핫플이라고 한 번이라도 호명된 적 있던 모든 곳들은 사람들로 부글부글 끓을 ..

ordinary; scene 2022.10.08

화요일 19일

내가 타지 않을 여러 대의 버스 뒤에 자리 잡은 144번 버스를 빨간불 신호에 맞춰 차분히 올라탔다. 여느 월요일 또는 화요일처럼 약수역에 가는 경로다. 며칠간 놓친 다른 사람들의 sns 피드와 인터넷상 꼭지 글들을 보며 한참을 간 것 같은데, 도통 익숙한 정류장 이름이 귀에 들어 올 생각을 않는 거. 얼마나 더 가야 하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보니 어? 왜 145번이지. 강남에서 탔는데 왜 나는 압구정에 와있지. 지체하며 모르는 동네를 순회할 순 없기에 일단 내려본다. 백화점 앞이네. 그냥 약수역에 가서 쌀국수랑 밥알을 어제 하루 못 먹었으니 나시고랭도 같이 배부르게 먹을 생각만 했는데 왜 나는 압구정 백화점이지. 301번 버스를 타고 폭이 긴 몇 개의 정거장을 지나 마침내 약수역에 왔다. 공심채 볶음밥..

ordinary; scene 2022.07.19

쫓겨난 꿈

여기서 깨고 싶지 않아 억지로 두 눈을 감고 최대한 몸에 힘을 풀어 본다. 달아나려는 잠의 끝을 억지스레 잡고 양껏 빌면 그마저도 방해가 될까 미약한 바람처럼 끝을 잡는다. 다시 꿈에 들고 싶어서. 이 꿈을 계속 꾸고 싶어서. 처음 2년 정도는 꿈에서 만난 당신이 진짜인 줄 알고 그 앞에 엎드려 엉엉 울었었다. 당신이 죽은 줄 알았다고, 그래서 너무 아프고 너무 힘이 들었는데 내가 사는 세상에서 당신을 잃어 가장 슬픈 사람들은 당신 가족이라는 걸 알아서 나의 슬픔이 건방져 보일까 봐 마음껏 슬퍼하지도 못했다고, 매일매일 나를 견디고 당신이 없다는 현실과 일상을 견디느라 너무 힘이 들었다고. 그렇게 응석을 부리고 억울함을 토로하며 당신 앞에서 많이 울었었다. 불현듯 떠진 눈에 정신을 차려보면 나를 끌어안은..

ordinary; scene 2022.06.25

이해할 수 있는 저녁이 올까

무엇이든 쓰고 싶어서 머릿속 임시 보관함을 열었더니 열망에 비해 황량해서 말들을 골라내기는커녕 머쓱함만 삼켰지 뭐람. 그래도 최근에 예쁜 사진을 찍어서 이것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만을 앞세워 블로그를 띄웠다. 티스토리 사진 업로딩이 너무 구려서 이게 내가 맥북 초보자여서인지 그냥 여기 시스템이 구려서인지 도통 가늠할 수가 없네 라고 적던 중에 드디어 사진 한 장이 업로딩 됐다. 이 녀석들 쓴소리를 들어야 말을 듣는 편인가. '그 집은 애들이 참 착해. 즈이 엄마한테 엄청 잘하잖아.'라는 칭찬을 종종 듣곤 한다. 안 그래도 칭찬에 내성이 없는 나는 대상마저 잘못된 것 같은 상급 칭찬에 몸 둘 바 몰라하며 대답한다. '아유 제가 잘하나요, 저희 집은 아들이 잘해요.' 감사합니다 라는 대답이면 될 것을 그러기엔..

ordinary; scene 2022.06.09

내 마음과 대화하는 스무개의 인터뷰 질문

1. 당신은 스스로 ‘번아웃’ 상태라고 생각하나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제활동을 오래도록 해왔으니까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익히 들어왔고 대강 어떤 상태를 일컫는지도 알고는 있는데, 이 질문에 답하기 앞서 사전에서 검색을 해봤어요. 사전적으론, 뭐가 됐든 '지친 상태'를 얘기하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번아웃에 빠졌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같은 맥락의 일을 근 7년 동안 해왔고 제 의지로 입사와 퇴사 모두 결정한 것도 맞지만, 무기력증과 우울감에 빠져 한 결정은 아니었어요. 한 달 전에 퇴사를 하고 약 반년 정도 합법적인 휴식기를 갖게 되었는데 앞으로, 이제는, 뭘,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었는데 '모르겠다.'라는 대답이 결국엔 '그냥 다 하기 싫다.'의 진짜 얼굴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ordinary; scene 2022.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