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ordinary; scene 44

화요일 19일

내가 타지 않을 여러 대의 버스 뒤에 자리 잡은 144번 버스를 빨간불 신호에 맞춰 차분히 올라탔다. 여느 월요일 또는 화요일처럼 약수역에 가는 경로다. 며칠간 놓친 다른 사람들의 sns 피드와 인터넷상 꼭지 글들을 보며 한참을 간 것 같은데, 도통 익숙한 정류장 이름이 귀에 들어 올 생각을 않는 거. 얼마나 더 가야 하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보니 어? 왜 145번이지. 강남에서 탔는데 왜 나는 압구정에 와있지. 지체하며 모르는 동네를 순회할 순 없기에 일단 내려본다. 백화점 앞이네. 그냥 약수역에 가서 쌀국수랑 밥알을 어제 하루 못 먹었으니 나시고랭도 같이 배부르게 먹을 생각만 했는데 왜 나는 압구정 백화점이지. 301번 버스를 타고 폭이 긴 몇 개의 정거장을 지나 마침내 약수역에 왔다. 공심채 볶음밥..

ordinary; scene 2022.07.19

쫓겨난 꿈

여기서 깨고 싶지 않아 억지로 두 눈을 감고 최대한 몸에 힘을 풀어 본다. 달아나려는 잠의 끝을 억지스레 잡고 양껏 빌면 그마저도 방해가 될까 미약한 바람처럼 끝을 잡는다. 다시 꿈에 들고 싶어서. 이 꿈을 계속 꾸고 싶어서. 처음 2년 정도는 꿈에서 만난 당신이 진짜인 줄 알고 그 앞에 엎드려 엉엉 울었었다. 당신이 죽은 줄 알았다고, 그래서 너무 아프고 너무 힘이 들었는데 내가 사는 세상에서 당신을 잃어 가장 슬픈 사람들은 당신 가족이라는 걸 알아서 나의 슬픔이 건방져 보일까 봐 마음껏 슬퍼하지도 못했다고, 매일매일 나를 견디고 당신이 없다는 현실과 일상을 견디느라 너무 힘이 들었다고. 그렇게 응석을 부리고 억울함을 토로하며 당신 앞에서 많이 울었었다. 불현듯 떠진 눈에 정신을 차려보면 나를 끌어안은..

ordinary; scene 2022.06.25

이해할 수 있는 저녁이 올까

무엇이든 쓰고 싶어서 머릿속 임시 보관함을 열었더니 열망에 비해 황량해서 말들을 골라내기는커녕 머쓱함만 삼켰지 뭐람. 그래도 최근에 예쁜 사진을 찍어서 이것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만을 앞세워 블로그를 띄웠다. 티스토리 사진 업로딩이 너무 구려서 이게 내가 맥북 초보자여서인지 그냥 여기 시스템이 구려서인지 도통 가늠할 수가 없네 라고 적던 중에 드디어 사진 한 장이 업로딩 됐다. 이 녀석들 쓴소리를 들어야 말을 듣는 편인가. '그 집은 애들이 참 착해. 즈이 엄마한테 엄청 잘하잖아.'라는 칭찬을 종종 듣곤 한다. 안 그래도 칭찬에 내성이 없는 나는 대상마저 잘못된 것 같은 상급 칭찬에 몸 둘 바 몰라하며 대답한다. '아유 제가 잘하나요, 저희 집은 아들이 잘해요.' 감사합니다 라는 대답이면 될 것을 그러기엔..

ordinary; scene 2022.06.09

내 마음과 대화하는 스무개의 인터뷰 질문

1. 당신은 스스로 ‘번아웃’ 상태라고 생각하나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제활동을 오래도록 해왔으니까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익히 들어왔고 대강 어떤 상태를 일컫는지도 알고는 있는데, 이 질문에 답하기 앞서 사전에서 검색을 해봤어요. 사전적으론, 뭐가 됐든 '지친 상태'를 얘기하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번아웃에 빠졌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같은 맥락의 일을 근 7년 동안 해왔고 제 의지로 입사와 퇴사 모두 결정한 것도 맞지만, 무기력증과 우울감에 빠져 한 결정은 아니었어요. 한 달 전에 퇴사를 하고 약 반년 정도 합법적인 휴식기를 갖게 되었는데 앞으로, 이제는, 뭘,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었는데 '모르겠다.'라는 대답이 결국엔 '그냥 다 하기 싫다.'의 진짜 얼굴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ordinary; scene 2022.05.10

이슈가 있나요, 별일 있나요

이왕이면 우리말을 쓰는 걸 좋아한다. 영어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닌 데다 어렸을 때부터 나름 다독을 했던 터라 단어의 쓰임과 맞춤법에 조금 예민한 편인데, 그래서인지 멀쩡한 우리말 두고 부러 꼬부랑글씨를 써야 할 필요를 못 느낀다. 가장 큰 예로 요즘 외식을 하러 나가면 식당과 카페를 불문하고 왜 죄다 이름들을 영어로 적어놨는지. 시력도 낮고 시야가 좁은 탓에 나조차도 키오스크 사용을 천천히 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 엄마 바깥에 나와서 혼자 주문할 수 있을까? 돈도 있고 혼자 그 시간을 즐길 여유도 있는데 주문을 못해서 시무룩해져 들어오게 되진 않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실제 그랬다는 경우를 주변에서 심심찮게 듣는 편이고. 가급적이면 우리말을 사용했으면 좋겠다. 괜히 뒤틀어 말 같지도 않게 ..

ordinary; scene 2022.04.29

허무의 성

이야기를, 문장을, 글을, 나를 적고 싶은데 어떻게 말을 띄워야 할지 막막해서 지나간 날들의 글들만 괜히 고심 고심 들여다보고 있다. 마감기한을 받은 것도 아니고 돈 받고 글을 쓰는 직업을 가져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이토록 오랫동안 무언가를 썼으면 좋겠다는 갈망을 갖는 것이 너무나 자기변명으로 느껴진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선망은 수차례 했었으나 내 글을 똑바로 읽는 타인의 그 거리가 부끄러워 자랑스레 꺼내보여준 적도 없고 남의 공간에 역 도둑질이라도 하는 양 나의 글을 던져 놓고 괜찮게들 보고 있는 건가 기웃거리기만 하는 것이 몇 해 째인지. 오늘도 여전히 이 블로그의 오래전 글들을 역순으로 읽어오며 10년도 더 된 낡은 활자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쓰지 않고 생각도 않고 있으면서 오늘도 방구..

ordinary; scene 2022.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