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전체 글 280

날(日)들의 갈래

눈병에 걸렸다. 눈병을 앓은 지 2주 정도 되었다. 다래끼로 한 눈이 부어올라도 '금방 낫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방치하다시피 하면 어느새 낫곤 했다. 약을 따로 먹지 않아도, 내원을 하지 않아도. 난시가 무척 심하지만 세상 잘 보는 것에 욕심이 그다지 없는 나는, 눈과 관련해선 스스로 속을 썩여본 적이 없는데 지난주 덜컥 눈병에 걸렸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하루, 눈이 조금 붓는가 싶더니 이틀, 눈병에 걸린 눈이 제대로 떠지질 않았다. 사흘, 안대 또는 선글라스 없인 사람 있는 곳으로의 외출을 꺼려야 할 만큼 눈이 엄청 부었다. 흰자위 검은자위 구분 없이 눈이 온통 빨갰다. 그리고 아팠다. 동네 윤안과 세미그랜드파(=준할배=중년과 노년사이)의 진단은 영 못 미더웠다. 눈의 상태를 설핏 보곤 '어떻게..

안고 싶은 마음

'품이 그립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외로움의 정의를 몸소 내려본 적 없는 나는 농담으로라도 외롭다는 말을 쓸 줄 모르는데, 그 빈자리를 대신하는 것인지 '품이 그립네.' 등의 시시껄렁한 말들은 혼자서 툭툭 뱉고는 한다. 짧고 굵었던 여름이 점심에만 머물며 아침과 밤으론 가을이 살며시 앉았다. 그 온도차가 귀엽다. 단출하지만 쌀쌀하지는 않도록 입을 옷을 챙기며 이리저리 뻗어지는 손길이 아직은 재밌다. 이 재미도 조만간 사라지겠지. 완연한 가을이 되면 외투는 꼭 필요한 것이 될 테니까. 그전까지 이 소소함들을 아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오랜만의 글이다. 칠월의 기록 이후 두달이 지났다. 여러 일들이 있었다. 누군가가 보며 즐거워할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으로 노트북을 열고 그 앞에 앉았다. 온전하지 않을까..

13_닮은 얼굴

'별 수 없잖아.'라는 문장으로 버리 듯 잘라 낸 인연들이 몇 있다. 나의 못됨을 꿋꿋이 확인해 가며, 그렇게 치워 낸 시간과 사람들. 나는 매일을 끊임없이 나를 견뎌내고 있다. 당신을 잃은 후 매일매일.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같은 질문, 같은 이유로의 반복. 나는 사랑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어떤 면에서도 너의 문제일 수 없다고. 오롯하게 나만의, 나의 문제와 결함이니까.  닮은 얼굴을 만났다.무척이나 닮은 얼굴.당신의 가족을.  정이 많은 당신은 지인들을 챙기는 일에 스스럼이 없었다. 학교에서도, 학교 밖에서도 당신 주변엔 늘 사람이 많았다. 많은 친구들 중에서도 유독 당신이 좋아하던 친구였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밤 열한 시가 넘어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함께 일한 그 친구와 무슨 ..

seek; let 2015.07.21

비겁

포기와 맞붙은 삶이라 비난해도 변명의 여지는 없다. 그만큼 많은 부분을 내려놓았다. 정규직 일개미를 원했던 열정은 어느 순간 동경에 가까워졌고, 먼 곳으로의 떠남 혹은 숨어버리는 것에 대한 열망은 2년 만에 제주도 가는 비행기를 다시 타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부족하고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른바, '퉁치며' 살고 있다. 삶이 퉁쳐지는 것이라니, 내 삶이 대충대충 퉁쳐지고 있다니, 우습다. 재미있고 기괴하다. 외출 후 돌아 온 나를 인지하지 못한 엄마 아빠의 대화 소리가 거실에서 들려왔다. 침대에 걸터앉아 덤덤하게 들었다. 두 사람은 나를 걱정함과 동시에 내게 화를 내고 있었다. 막무가내로 구는 막내딸이 못마땅하지만, 당신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이 크지 않아 손 내밀지 않고 묵묵히 때로는 무서울 만큼 ..

단출해지는 연습

단출하다 [형용사] 일이나 차림차림이 간편하다. 높은 기대와 막중한 책임을 짊어진 대단한 삶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에 나를 이루기까지 어렸을 때부터 체득한 방식과 그것들로 꾸려온 삶은 그렇게 단순하진 않았다는 생각이다. 운이 좋은 편이고 인복이 많아 언제나 감사하다고 입에 달지만 실상 그렇게 살가운 사람이 못되기도 할 뿐더러 나는 자기중심적이다. '너는 제멋대로야.' 라는 말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들었던 순간에야 알았다. 아, 내가 제멋대로인 사람이구나! 그것은 '어떻게 내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너무해!'의 까탈이 아니라 깨달음이었다. 나는 그 전까지 나의 생각과 행동을 풀어내는 데에 그다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했으니 당연히 운이 좋을 수밖에 없었고, 이런 내곁에 남아준 지인들은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