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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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낭떠러지

소통의 낭떠러지. Precipice of Communication. 진심이 온전히 전달되는 때는 언제일까. 일생동안 그런 행운의 순간을 우리는 몇 번이나 맞이할 수 있을까. 속으로 삼키고 침묵하는 때가 많았다. 2010년부터 나는 그렇게 조용해지는 방법을 알았다. 모든 고통들은 개별의 것이고 그것들은 설명은 가능하나 공감되지 않는다. 나의 것이고, 너의 것이기 때문에. 하물며 그 고통의 순환에서, 시발점이 '나'였다면 이는 더더욱 말로 풀어질 수 없는 것이 된다. 나는 시작이었고, 그렇기에 말과 마음을 삼켰다. 침묵으로 얻어지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같은 침묵, 그리고 오해. 내가 기대했던 것은 같은 침묵이었다. 내가 말과 마음을 삼켰으니, 이에 대해 길게 따라붙는 거추장스러운 말꼬리 또한 없겠거니 했..

거인 Set Me Free, 2014

개봉 전, 영화 내용과는 별개로 감각적인 포스터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포스터 자체에서 뿜어지는 영화의 아우라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나는 공개 된 세 장의 포스터 내 카피에 계속 마음이 쓰였다. '절망을 먹고 자라다' '사는 게 숨이 차요' '세상이 나한테 어쩜 이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볼 영화 타임테이블을 짜며 눈에 바로 보이던 을 예매했다. 11시. 제법 오전의 영화였던지라 나의 집중력이 괜찮을까 싶었지만(내게 이 정도면 아침이다.) 이왕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 GV관을 골랐다. 나름 배우 최우식을 볼 수도 있겠구나 기대했지만 동명이인으로 본의 아니게 화제가 된 아담한 김태용 감독만을 보았다. 정리되지 않은 몇 개의 질문(GV 당시 질문들이 정말 별로였다. 질문하는 이들 스스로 본인..

⌳ precipice,/see 2014.10.19

숫자로 기억되는 것들

숫자로 기억되는 것들이 있다. 기억의 장면들이 숫자와 얽히며, 기억을 먼저 떠올리기에 앞서 숫자를 통해 그것들을 연상해내게 된다. 이를테면, 계절이 담기는 월(月)의 그 숫자를 보고 있노라면 따뜻하고 덥고 서늘하고 쌀쌀한 계절의 감각들이 연상되는 것처럼. 오늘은 그런 몇 개의 숫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다. 사실, 좋다 나쁘다 할 것은 없지만 이왕 적어지는 것들이니 기분이라도 좋자면서 되는대로 갖다 붙여본다. 나는 숫자를 잘 기억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숫자와 연관된 기억들은 제법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다. 부러 세어가며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대개는 자연스럽게 장면과 숫자가 얽혀있다. 내게는 한 묶음처럼 보이니 무엇 하나 떨어뜨려 생각되지 않는다. 떠오르는 몇 ..

길을 돌아도 결국

/ 길을 돌아도 결국 사랑에 닿는다. 일상이, 삶이 아이러니 같다. 꾸민 적 없지만 그래서인지 모두 꾸며댄 것만 같은 그런 위화감이 도처에 있다. 내가 들여다보는 나의 삶이 이렇게 별로일 수 있을까 헛웃음이 터지는데 이를 막을 도리가 없다. 사랑의 위대함을 인정하고 하물며 숭배라고 할 만큼 높이 경외함에도 어째서 나는 사랑일 수 없나. 아니, 어째서 그것이 되지 않나. 어떻게 사랑이 되지 않나. 사랑하는 것들을 꾸역꾸역 끌어안으려 할수록 허무가 허리를 쿡 찔러온다. 마치 '너 그거 필요없잖아. 뭘 그렇게 챙기고 있어.' 빈정거리며 여기가 정곡인 양 깊게 찔러온다. 도리질로 한 번 응수해 보지만 결국 녹다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결국엔 그것의 옆자리에 가 앉아 있다. 바짝 붙지 못하고 한 뼘..

뻔하면 어떨까 싶고

곁에 향초를 켜두고 글을 적는다. 처음부터 작고 낮던 것이라 시간에 따라 불에 녹으면서 더욱이 작고 낮아졌다. 유리잔 안에 손가락을 깊이 넣고 라이터를 켠다. 심지에 가까스로 작은 불기둥이 닿고 불이 붙는다. 흡사 아무것도 아닌 듯한 은은한 향이 조금씩 퍼진다. 냉장고 과일칸에 들어있던 마지막 포도 한송이를 꺼내 씻었다. 팟캐스트 '신형철의 문학이야기' 마지막 편을 재생했다. 마지막 포도 한송이와 마지막 방송이 곁에 있다. 그리고 곧 마지막으로 불이 붙을 향초까지 더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서울역에 가야한다.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간다. / 지난 여름 먼저 경주에 가 있던 당신과의 통화 중. 낮에 불국사에 들렀는데 나란히 있는 이것을 보는 순간 내 생각이 났더라고. 작은 것이라 선물이라 하기 머뭇하지만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