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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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들이 참 좋아.

지난 포스팅에, 부사관 임관식을 마치고 휴가를 나온 뽈의 머리를 잔뜩 비웃으며 글을 쓴 적이 있다. 술값이 어쨌고 저쨌고 했던 그 포스팅. 코소보에 가서 보드카와 데낄라를 잔뜩 마시고 빌지에 찍힌 선명한 숫자 190,000원을 뽈이 계산했더라는 그 포스팅. 1차에서의 9만원을 내가, 2차에서의 6만원을 수박이가. 우리 미쳤나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래의 사진들은 그 날 그곳에서의 기록이다. 코소보를 벗어난 공간에서의 사진은 없다. 저 자리 말미 즈음의 사진도 없다. 난 취했으니까 하하하하하. 자리에 앉고 주문할 적에 사진인 듯. 무언가를 요구하는 듯한 다운이의 입모양과 집어내는 듯한 예솔이의 손짓. 다운이와 예솔이는 뽈을 정말 사랑하는 친구들이다. 뽈이 입대하는 날에도 같이 가주고, 저 날도..

⌳ precipice, 2013.03.12

띄엄띄엄

사진과 함께 풀어보는 띄엄띄엄의 기록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니 마치 EBS같군요(아님 말고) 춘삼월과 함께 우리집 두툼이는 백수가 되었습니다. 백수의 자존감은 어디에서 발현되는가. 그것은 살.림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했으니 오십 넘은 임여사도 생산활동을 하며 자본주의에 허리를 굽히는데 어딜 스물 여덟 사지 멀쩡한 총각이 가만히 시간을 놀리고 있겠소. 돈을 벌어오지 아니하다면 살림을 깨끗하게 꾸려나가야지 암. 그런 깨달음이 스스로도 들었는지 갑자기 도시락을 본인이 싸 주겠다고. 개인적으로 잡채를 사랑합니다. 한 사람을 생각하며 재료를 고르고, 손질하고, 불 앞에 서서 정성스레 팬을 돌리고 칼질을 하는 일련의 그 과정과 시간을 사랑합니다. 그만큼 정성어리게 수줍지만 진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없..

⌳ precipice, 2013.03.11

05_새벽에 묻혀버린 새벽

'새벽에 너 울잖아.'무슨 소리냐는 듯 눈동자로 물었다. "내가?"'그래 술 잔뜩 마시고 우리 집 가면 너 새벽에 자면서 울어. 되게 흐느끼면서.'알은체도 할 수 없었던 새벽의 나. 새벽의 나로부터 피어나던 절망의 아지랑이.완전하지 않았지만 덕분으로 무사한 일상일 수 있었다고 안심했던 지난 새벽의 무수한 '나'들은, 종내엔 절망의 연기를 잔뜩 피워내며 나의 울타리들을 숨 가쁘게 했었구나. 현실의 나는, 모두 내 잘못은 아닐 거라고 면죄부를 찾아내기에 조급했는데, 무의식의 나는 상처의 홍수를 방어하지 못하고 눈물로 희석하기에 바빴었나 보다.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무척이나 촌스러웠던 차림을 한 열여덟 살의 나와, 병원 환자복의 티를 감추기 위해 애쓰던 당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걸음이 불편했던 만큼, ..

seek; let 2013.03.06

도배된 생활

음주로 도배된 생활, 이라고 가히 꾸밀 수 있을만큼이지 않나 싶다. 최근 기억에 남는 술값으로의 지출은 도합 203,000원. 심지어 두 번이라는 횟수에 제한된다는 점이 크고도 큰 함정이 되시겠다. 분명 열흘전에 월급을 받았던 기억이 나는데 수중에 왜 3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잔고만 잡히는지도 의문이고. 뽈이 휴가를 나왔다. 엄연히 구분짓자면 8주간의 훈련을 끝으로 부사관으로의 임관식을 치뤄내고 지난 연휴 전 4박 5일의 휴가를 나왔다. 두달 만에 만난 친구는, 웃겼다. 머리가 정말 웃겼다. 준코 18번 방문을 열고 들어서던 뽈의 민망함이 묻은 웃음보다 먼저 두 눈에 가득 들어오던 그 머리. 머리. 머리. 머리! 술을 마시다가도 후악- 하고 머리가 눈에 차버리면 웃음이 자꾸 크게 터져 사레에 걸리곤 했다..

⌳ precipice, 2013.03.05

낭창낭창한

참, 생각이 많이 났다. 옷걸이의 귀퉁이를 쥐고 내 어깨에 천의 끝을 맞춰보며 참, 생각이 많이 났다. 푸쉭푸쉭 새 나오는 웃음들의 정의를 온점을 끝으로 내리지는 못했지만 아무렴. 참, 생각이 많이 났다. 미디엄 사이즈의 옷들을 보고 있었다. 소매 길이도, 품도, 어깨의 선도 무엇하나 똑하고 떨어지지 않을 것이 자명한데도. 왜인지 모르겠는지 알겠는지 아무튼간에 그렇게 동선을 또박또박 걸어가며 그러고 있었다. 어제의 저녁, 아무렇지 않게 말풍성을 만들어냈다. 좋아하던 등이었다. 예쁘던.

⌳ precipice, 2013.02.27

04_비

조금, 처량히 내리는 비를 오도카니 바라보고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정말이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비 오는 날을 견뎌내지 못하던 스물두 살의 내가 있었다.지금도 기억하는 풍경엔, 셋이 있었다. 도로를 향해 테이블이 놓였던 자리는 통유리로 되어있던 대학교 근처 커피숍이었다.아르바이트밖에 모르던 때였다. 학점은 누더기가 되어 헤벌레 입을 벌린 채 멍청한 웃음을 띠고 있는데, 오픈조며 마감조며 가라지 않고 부모의 경제적 지원 없이 학자금 대출을 갚기에 바빴던 스물두 살. 대학생이라는 청춘의 명찰보다 아르바이트생이라는 근로자의 신분이 더 잘 어울리는 꼴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다음 수업을 기다리던 공강 시간.군대에 갔던 동기가 휴가를 나와 학교를 찾았다. 대학교 친구는 단 두 명이다. 소현이와 곰. 곰의 본..

seek; let 2013.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