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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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고 싶은

무슨 글이든 쓰고 싶어 가라앉는 눈꺼풀을 고사하고 컴퓨터 전원을 부릉부릉 키웠는데 글쎄, 두 단락 넘어가는 글도 막상 써내지 못하겠지 라는 단념에 오래도록 키보드 위에 손이 머문다. 별 일도, 놀라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오늘은 아니 그러니까 어제는 월급날이었고 '그래 결국 내 주제는 이 정도인거야.' 라는 자가체념을 종용하는 숫자들이 급여명세서에 열을 맞춰 서 있었다. 경례를 붙이는 듯 보였으나 그것은 예가 아닌 서명을 재촉하는 회계적 수치들에 불과했다. 애초 협상이란 것은 없었고 테이블 위엔 설득을 가장한 강압이 뚝뚝 날카롭게 갈린 우박처럼 떨어졌다. 나쁘지는 않았다. 좋을 것도 없었지만 이 정도의 깜냥과 적당한 성실함으로 주40시간 근무에 대한 보상은 나쁜 편은 아니었다. 학점과 맞바꾸며 개처럼 ..

⌳ precipice, 2013.03.26

연애의 온도, 2012

"다시는 내 눈에 띄지 마라. 죽여버릴테니까." 미친년과 개새끼가 오가는 술자리에 반반한 남녀 둘이 으릉으릉 대립하고 서 있었다. 어? 하는 호기심에 한 번. 우연히 다시 마주한 티져엔 같은 사람, 다른 술자리에서 오열하며 보고싶어 죽겠다 끅끅대는 남자와, 침대에 엎드려 엉엉거리는 여자가 있었다. 그 장면을 두 차례 마주하고 결심했다. 보고싶다 저 영화. 별 일이 없는 주말, 두툼이가 물어왔다. 연애의 온도 보러갈래? 심드렁한 얼굴로 '글쎄 별로' 퇴짜를 놓고 몰래 예매했다. 혼자 보고싶었다 이 영화를. 뜨거운 피를 가진 보통의 인간으로 삶을 꾸리면서 쏘쿨을 남발하는 보통의 이십대들의 허세짙은 패기를 남몰래 모욕하고 그안에 함께 둥글려진 나라는 인간은 보지 않으려 했다. 쿨한게 다 뭐야 지질하게 구는 것..

⌳ precipice,/see 2013.03.24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2012

은채씨, 옷 그렇게 입을거면 그 몸둥이 그냥 나 줘요. 홍상수 영화의 여주인공들은 왜 다들 옷을 그렇게나 거지같이 입는 것인가. 이건 한 번 쯤 고찰이 필요하지 싶다. 아무리 일상과 면밀한 독립 장편 영화를 그리는 감독이라 할지라도, 요즘같은 일상에 저 정도의 센스로 옷을 입는 여성이 과연! 얼마나! 있다고! 하물며 바지만이라도 스탠다드핏이던가 아, 부츠컷이 웬 말인가. 애니웨이, 트위터에서도 영화를 보고 나온 후에 짧게 트윗했다. 140자로 늘릴만큼의 감상평이 나오지도 않았을 뿐더러 뭔가 문장의 단장이 드러나서 좋을 것이 없다는 개인적 감상에서 였다. 영화가 나빴다는 것이 아니고, 느낌이 그저그러했던 것뿐. 찌질하다. 솔직하고. 찌질해서 좋고, 창피하지만 솔직하고, 그래서 좋더라 이 영화는. 가장 기억..

⌳ precipice,/see 2013.03.17

신세계, 2013

무간도 오마주면 좀 어떻습니까. 마흔 네 살 아저씨가 저 정도 섹시하면 됐지. 기존 러닝타임도 짧은 편은 아닌 140분 정도 되는데 편집된 분량이 50분 정도 된다고. 감독판 dvd가 나오면 보다 명확한 결말 해석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누리꾼들 사이에서의 소식이 있기는 하나, 이 정도 열린 결말이면 퍽 괜찮지 않나 싶다. 이 영화의 단점은 '저런 깡패오빠나 남편 있으면 꽤 좋을 듯?' 하는 위험한 판타지를 심어준다는 것. 하하하. 최민식과 황정민의 연기야 워낙 정평이 나있으니 코멘트 붙이기도 입 아픈 수준이라 하겠지만, 의심가는 이정재의 함량으로 괜찮을까 싶었었다. 그가 주연으로 등장한 영화들의 흥행은 커녕 처참한 완패를 보아왔으니. 아니나다를까 영화 개봉과 함께, 이자성 역할을 최민식이 직접 이정재에게 ..

⌳ precipice,/see 2013.03.17

Silver Linings Playbook, 2012

올 해 들었던 보았던 여러 편의 영화 중, 가장 좋았던 영화. 보는 동안 한 손은 주먹을 쥐고 입술 위에 댄채 시선을 조금 치켜뜨고 봤더랬다. 대사들이 또박또박 열을 맞춰 귓 속으로 들어왔고 인물들의 배경과 그들이 서있는 길가의 나무와 도로 아스팔트의 질감까지 꽤나 생생히 다가왔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만족감이었다. 주인공 주변 인물들의 상황과 대사들에서 동시에 생각이 고리가 열렸고, 열린 고리들이 막힘없이 이어져가면서도 눈은 계속 영상을 좇아 가던 순탄한 느낌. 문자 그대로 영화를 '잘' 보고 있구나 느껴졌다. 영화는 지나치게 따뜻하지 않았지만 그 적정의 온도 덕에 더 깊이 스밀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핸드폰에 파일을 넣어두고 왕왕 장면들을 돌려보고 있다. 브래들리 쿠퍼가 공황장애처럼 혼자만..

⌳ precipice,/see 2013.03.17

The Berlin File, 2012

개봉 후 많은 매체들에서 호평과 혹평이 균일하게 쏟아졌다. 어느 기사와 리뷰에 휘둘리지 않을만큼의 텀이 지나기 전, 명절 기간 극장에를 찾아 보고 왔었다. 가장 눈에 띄던 혹평들은 대개 본시리즈와의 비교를 논하며 할리우드 스케일을 따라가고 싶던 뱁새의 처절함이라 표현하고 있었다. 쥐뿔 영화를 잘 모르는 나지만 그 비교들에는 웃음이 났다. 어떤 뱁새가 저리 화려하기나 했는지. 북한사투리가 많아서였는지 귀에 낯선 화법에 물리는 대사들이 잘 안들리곤 했다. 그건 분명한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특히 이경영 아저씨의 대사 20%는 두번째 관람을 했을 때에도(난 무려 베를린을 두 번 봤다 그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쯤되면 내 귀가 문제인지 아저씨의 발성이 문제인지 한 번 고민해봐야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에서도 이..

⌳ precipice,/see 2013.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