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280

보고서를 쓰는 중이라 해둡시다.

문득 어떤 사람이 된다는 것에 대해 짧막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는 약간의 열망은 그보다 못한 지금 나의 현실과 나의 못남에서 비롯된 열등의 꽃인걸까 아니면 그저 순수한 작은 열망으로 봐도 무방한걸까. 사무실 내 자리에 앉아서 보는 뷰(view)는 언제나 같다. 똑같이 지겹고 언제나 같은 템포로 업무시간은 지나간다. 오늘은 좀 나만의 템포를 갖는다. 1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경영성과보고회의 때문에 팀장님은 자리를 비우셨고, 내 앞자리에 나란히 앉는 두 대리님은 부산으로 출장을 갔다. 내 옆과 팀장님 사이에 낑겨앉은 이후부터 안색이 그닥 좋지 못한 스물여덟 동기 사원도 외근을 나갔다. 고로, 우리 부서 자리에는 지금 나 혼자있다. 타이핑이 길어지고 있으니 타부서 사람들의 눈동자들이 몇..

⌳ precipice, 2013.02.05

01_비겁일 수 있었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건 아니었는데.늘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도리질을 하며 치워냈던 지질한 그 미련을. 아직 아이임이 명백한 이 미성숙한 짐들을 어떻게 수납해야 하는지 가이드북 없이 스스로 알아가는 데에 걸린 시간이 햇수로 3년. 광활한 그 범위를 모두 숙지하긴 어려워 머리말만 수십 차례 읽고 있다. 읽고 또 읽어보고 주변에서 일러주는 나름의 도움들을 이제는 조금씩 내 메모장에 옮겨 적기도 하면서 그렇게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겨가고 있는 듯하다.믿기지 않는, 믿을 수 없는 현실임을 부정하며 지키고자 했던 건, 당신이기도 했지만 나의 기틀이기도 했다. 인정하고 나면 그 후에 걸레처럼 처박힐 병신 같은 행적들을 견뎌 낼 수 없을 것 같아 한사코 손사래로 받아쳐냈던 시간. 이제는 조금 알겠더라. 어쩔 수 없었..

seek; let 2013.02.03

그렇지않은 그런 것

"난시가 무척 심하시네요." - 네, 마지막 검사 때도 그 얘기 들었었어요. 제가 난시가 무척 심하대요. "네, 정말 심하신데요 렌즈 끼세요?" - 아뇨 껴본 적도 없어요. "그럼 평소 생활은 어떻게 하세요? 안 불편하세요?" 안 불편했는데. 환하고 또 환한 안경점 내부의 형광등 아래 적나라하게 피부 잡티를 보여주는 거울 앞에 서서 눈을 몇 번 껌벅거리다 대답 대시 속말을 뱉었다. 아, 나는 바르게 보는 것에 대해 욕심히 전혀 없는 사람이라서요. 근래 몇 달 동안 시력이 많이 안 좋아지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두 달 전부터는 가만 앉아있어도 아랫허리 왼편이 저릿저릿 거리는 것이 '몸이 좀 망가진 것 같은걸' 이라는 체감이 실로 들어 마사지까지 받고왔다. 생애 처음 받은 전문가의 마사지는 지옥 문턱 앞에 나..

⌳ precipice, 2013.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