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ordinary; scene 44

무사함으로

미리 밝히자면, 이것은 비용을 대신하는 글이라고. 잊었음에 대한 변명의 비용. 누군가는 별 일이 아니라고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도 할 법한 그런 일인데, 나는 왜 내게 실망하고 속상한지 모를 일이야. 네 생일을, 여느 때처럼 몇 단락의 문자로 길게 축하하던 그 생일을 잊은 것이 나는 좀 의아하고 더불어 서운하네. 너도 아니고 내게 말이지. 겨를이 전혀 없을만큼 일이 바빴다면, 한겨울에 떨어져 우울함으로 정신 끝자락을 붙잡고 있었다면, 관계가 부질없어 손놓고 있었다면, 일 년에 한 번 정도 앓는 열병을 이번 참에 앓았다면, 아무튼, 변명으로 퉁- 쳐질 것들의 가운데에 있었다면 이리 속상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나는 그게 아니었어서 그래. 나는 별 일이 없었거든. 한여름을 벗어나 일하는 매장은 다시 바빠지긴 ..

ordinary; scene 2021.09.22

Interview

당신의 삶에 깊이 남은 인생 작품(책, 영화, 드라마 등)은 무엇인가요? 지금 당신의 삶에서 용기가 없어 주저하고 있는 일들은 무엇인가요? 만약 당신에게 100억이 생긴다면,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요? 다른 사람이 말하는 당신의 가장 큰 매력이나 장점은 무엇이라고 하나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는 무엇이고 어떤 특징이 있나요? **만약 신이 한 가지 질문에 대해 답을 해준다면, 해답을 듣고 싶은 당신의 질문은 무엇인가요? 자살하면 정말 지옥에 가나요. 생(生)이 도무지 견딜 수 없어 선택한 자살이어도 불지옥에 가는 건가요. 스스로 해한 목숨이라도 꽃이 만개한 천국엔 갈 수 없나요. **지금 당신의 삶에서 버려야 할 것, 중단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자기연민, 염세주의, 슬픔전시 지금까지 살면서..

ordinary; scene 2021.09.06

크기는 상관없으니 깊이로 안아주었으면 하는 바람

술을 많이 마셨다. 무엇이 부족했는지, 간절했는지 두 달의 금주 기간을 스스로 마치며 기다렸다는 듯이 '11월이니까' 라는 명분을 앞세워 이해받지 못할 것이 뻔한데도 아랑곳 않고 술을 많이 마셨다. 다시 잠을 곧게 자지 못하는 시기가 왔다. 아침에도 낮에도 새벽에도 깨어 있고 잠에 드는 불온전한 주기. 어머니와 긴 이별을 한 친구를 안아주고 돌아왔던 날. 먼저 문자를 적어낼 수 없는 나를 읽기라도 한 듯, 저 멀리서 먼저 날아 온 연락. 간지러운 곳을 다 알고 있어 쿡쿡 찌르며 다름없는 온도로 곁에서 장난을 꾸민다. 왜 전화했었어 라는 너의 질문에 '그냥 했겠지 뭐' 어영부영 대답의 끝을 흐리면 그 말이 무어 귀여운지 두 볼을 한 손으로 잡고 누르며 어린아이 얼르 듯한다. 오랜 시간, 오래된 시간으로 쌓..

ordinary; scene 2021.08.16

위로 받으시겠습니까

눈물이 왈칵 쏟아지던 밤이 있었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왜 그랬지 싶은데도 그 밤엔 속절없이 그냥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고개 숙여 물방울을 바닥으로 떨궈내면서도 입 밖으로 비집고 나온 말들이라곤 고작 '슬퍼. 너무 슬퍼.' 뿐이었다. 거의 엉엉 소리에 가깝게 흐느끼며 십여 분을 택시정류장에 앉아 울었다.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다가도 이렇게 슬프면 안 되는 것 같다가도 왜 나는 계속 슬퍼야 하는지가 억울해서 모든 정의되지 않은 마음과 생각들이 한 데 뭉쳐져 눈물로 떨어졌다. 슬퍼서, 마음이 슬퍼서 그렇게 울었다. 몇 년 전일까. 스물 여섯이었나 다섯이었나. 그쯤엔 머쓱하더라도 위로해달라 조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말이 떨어지질 않는다. 나이만 차곡차곡 찼지 나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나이처럼 지..

ordinary; scene 2021.08.09

매뉴얼

매일 하나씩, 두 달 동안 60개의 질문을 받고 그에 답했다. 질문들은 온전히 내게 향했고 나의 대답 역시 온전히 나로부터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맥락이 비슷하게 묶이는 질문들이 여러개 있었고 그에 대한 나의 대답과 고민의 시간도 비슷하게 묶이곤 했는데 그것들의 공통점을 정의하자니 스스로 좀 우스워졌다. 내가 매번 걸려 넘어지는 질문들은 내게 '가장'을 물었다. '가장' 좋아하는 게 뭔지, '가장' 싫어하는 건 또 뭔지. 두어개를 꼽아보라, 다섯개를 꼽아보라가 아니라 '가장'으로 하나의 대답을 원했다. 나는 매번 멈칫했다. 스물셋부터 나의 삶은 뭉뚱그려졌다. 내가 그렇게 정의내렸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다. 그 외는 모두 흐릿하다. 가장 좋은 것도 없고, 가장 싫은 것도 없다. 모두 감정의 영역..

ordinary; scene 2021.08.04

엄마

얄팍한 문 가운데 두고 속으로 삼킨 눈물이 많았다. 운동을 다녀와 종일 요리를 했다. 엄마의 퇴근에 맞춰 함께 공원을 걸었다. 눈이 나쁜 나는 저멀리 걸어오는 그림자의 주인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먼저 꺄르르 웃음이 터진 엄마가 내게 바삐 다가왔다. 그 순간이 바보같이 눈물겨웠다. 늘 나를 먼저 알아 볼 사람. 잘 있는 듯 안심시켜야 하는 이가 늘어난다는 것은, 어쩌면 참 피곤한 일이다. 고단한 마음의 무게들. 나는 사실 나를 포기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그리고 이 세계가. 빤히 쳐다보기에 왜 그러냐 물으니 '예뻐서' 라고 대답한다. 엄마는 술 적당히 마시고 일찍 들어오라고 했다. 그래서 술을 적당히 마시고 아침 일찍 들어갔다. 엄마는 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돈을 다..

ordinary; scene 2020.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