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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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훈련받고있을 친구 뽈을 생각하며 편지를 썼다. 2월 말 즈음 임관식을 마치고 사제의 품에 안길 뽈을 기다리며 'ㅋ'가 최소 서른번은 들어간 편지를 썼다. 약 열흘 전 보게된 뽈의 훈련병 사진은 후회와 처참만이 눈에 들어오던 처절함이었다. 카메라를 응시하던 뽈의 눈엔 '여긴 어디 난 누구'의 당혹이 그대로 묻어나있었다. 솔직히, 짠함보다 웃음이 먼저 터져 근무하던 중 5분간을 끅끅대며 웃기에 바빴다. 미안. 어서 실제로 만나 잔뜩 놀릴 수 있으면 좋겠다. 내게 편지받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할텐데.

⌳ precipice, 2013.01.20

다이어리를 펴보지않고

다이어리를 펴보지않고 써보는 그간의 기록. 이러다 뻐끔뻐끔 혼자 골몰해하다 빼꼼 다이어리를 펴볼지도 모를 일이지마는, 그래도 기억에 한 번 의지해서 적어보아야 겠다. 사랑하는 계절과 달(月)이 있는 반면, 숫자와 영어 철자만 보아도 먹먹해지는 달과 계절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겨울을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이 모순의 핑계를 어떻게 찾아 적어야할까. 분명 사랑하는 계절이었는데, 더없이 기다려지던 풍요의 계절이었는데, 글쎄 지금은(저기 언제부턴가) 체감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 속도를 마주보기가 어려워졌다. 말들과 얼굴이 계속 생각이 나서. 근무시간에 적는 짧은 포스팅은 설레며 신난다. 내 바로 옆자리던 팀장님이 한 칸 옆으로 자리를 옮겨 가셔서 물리적으로는 분명히 멀어졌는데 유려하면서도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

⌳ precipice, 2013.01.15

흉터가 움직여

'흉터가 움직여' 대화를 하다가 순간 멍해졌다. 별 것 아닌 말일 뿐이었는데 네 번 정도를 같은 소리로 따라읽고나니 더없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흉터가 움직인다, 라니. 흉터가 움직였다, 라니. 아- 흉터는 움직이는구나 움직이는거지.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사이의 갈퀴가 찢어졌었다고 했다. 빵-하고 작은 총탄에 의해 구멍이 나듯 그렇게 찢어져 얼기설기 근육들이 애써 모여 만들어낸 환생의 조각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했다. 이윽고 다른 손 손가락 끝을 움직여 3센치 가량 위를 가르키며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흉터가 여기에 있어. 분명 이 아래 있었는데 지금은 여기야. 이상해. 흉터가 움직여." 당연한 소리를 뭘 그리 놀라워하냐는 듯 실소를 뱉고 이야기해줬다. "살가죽이 자라나니까 그렇지. 그때의 너보다 지..

⌳ precipice, 2013.01.12

Life of Pi 라이프 오브 파이, 2012

보고싶었던 영화였다. 어딘지 묘하게 특정 라인 아래로 가라앉지 않는 감정선을 갖고있는 것 같다. 많지는 않지만 몇 편의 이안감독 영화를 보고난 후의 느낀 개인적인 감상이다. 파이이야기 역시 적정의 감정선을 림보걸이 어디쯤엔가 맞춰두고 그 위 아래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시종일관 신을 이야기하고 나를 구원한 그분의 위대함과 인간이라는 미물이 맞춰두고 걸어가야할 길에 대한 도덕적 준거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보니 그런 일련의 대사와 그것들을 내뿜는 미쟝센이 거슬릴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보지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섬세한 사람은 아니다보니 윈도우 바탕화면같은 롱테이크를 바라보며 우와우와 거리기에 바빴고 리챠드빠ㄹ커(이렇게 들린다 실제로ㅎㅎㅎ)의 생생한 수염결을 보며 '분명히 C..

⌳ precipice,/see 2013.01.12

현관 앞 두 발자국

새벽 늦게 잠이 들었다. 2013년 1월 1일이 되던 12:00분에 임여사와 울집두툼이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식상하지만 따뜻한 인사를 한마디씩 건네고 내 방으로 돌아와 오래오래 잠에 들지 못했다. 피곤한 것은 맞는데 요즘은 도통 오래, 잘 자지 못한다. 오후 12시쯤 엄마의 기상나팔 버금가는 깨움에 눈을 떴다. 신정에도 어김없이 출근을 한 울집두툼이의 빈자리를 안쓰러이 여기다 무릎 앞으로 바짝 차려진 점심밥상에 모든 근심을 잊고 임여사와 단둘이 식사를 했다. 나는 임여사가 끓여준 김치찌개가 너무 좋다. 두부가 김치보다 많은, 두부라면 환장하는 딸을 위한 맞춤 찌개. 임여사와 사우나에를 가려 했는데 나태의 위용을 어김없이 뽐내는 잉여력 만렙 딸은 전기매트 위를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목욕가방 챙겨들고..

⌳ precipice, 2013.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