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pice o-f- Communications./

타인의 불행 앞에 나의 다행을 뒤적거리는 비겁함을 갖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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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으로 가는 날, 가평역

9월 2일. ITX를 타고 함께 청평을 찾았던 나와 친구들은 만 하루가 지나고 각기 다른 역을 향해 기차를 탄다. 친구들은 집 방향으로 가는 서울행 기차, 나는 용서를 구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철원에 있는 아부지에게 가기 위해 환승의 위치에서 가평역으로 가는 기차. 전 날 밤, 철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루트를 검색해보니청평역->가평역->가평시외버스터미널->철원동송터미널이와 같은 루트가 가장 빠른 길이라고 알려주더라. 초록모자포털에서. 가장 빨리 가는 길이 두 시간, 심지어 버스 시간대가 잦지 않아 터미널에서 1시간 기다리는 것은 예삿일. 무튼 청평역에서 가평역으로 가 기차에서 내렸는데 우와- 하늘이 무지막지하게 맑고 파란거다. 이건 고기먹고 보트타러 온 여행에서 예기치않게 얻은 한 단의 호사같..

봄의 볕들을 다시 짚으며

'볕' 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따뜻한 낌새를 안고있다. 비읍 아래에 티읕 받침이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어지간히 생경한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단 하나의 음절이 갖고 있는 그 온기를 어느 것에 비할 수가 쉬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볕 아래를 걷는다는 것은, 설령 내가 당장에 나가떨어질 비루한 신을 발에 끼우고 거리를 종횡무진한다고 해도 그 걸음들이 모두 안전하다는 안도를 내포한다. 걸음에 질서는 없고 얼룩한 자국들이 선연해 눈이 부시는 좌절을 삼키게 될지라도 그 볕은 조용하고 분명하게 내 손목을 다정히 옭아쥐고 걸음걸음 굳은 발자국으로 앞장서며 믿음으로 휘장한 곧은 어깨의 선들을 뽐낸다. 내게 볕이란 그러하고, 곧 너는 내게 볕과 같다.

⌳ precipice, 2012.09.04

One day, 2011

예견되지 못한 상실이 끼얹고 가는 뜨거움은 몸둘바를 알 수 없는 화상과 같은 열熱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공기 중에 몸을 띄운 채 군데군데 얼룩지며 태워져가는 것. 방위를 헤매고 돌아 뒤늦게 찾은 확적의 갈래에서 순식간에 신을 빼앗아가면 채이는 돌뭉치들에 군데군데 살점이 뭉개지곤 벌건 피를 흘리며 절뚝거리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자국 내딛어지지도 못한 채 제자리 맴을 돌고있는 그 모양새가 지켜보기 애잔해져 올텐데. 갈무리 된 시간이라 한들 표백되어 자국 하나 남기지 않는 것이 아니니까 융숭한 마음 대접은 어긋난다해도 간혹이라면 휘청여지는 것도 썩 모멸차지는 않을 거야.

⌳ precipice,/see 2012.08.22

팥빙수 전문점 이름으로

팥빙수 전문점 이름으로 뭐가 좋을까? 라는 어느 트위터리안의 트윗에 몇차례 RT가 따라붙었다. 팥빙수 전문점이니까,아이팥 팥파라치 팥케스트 잭팥웃자고 한 말이다. 나만 재밌나 팥파라치? 무튼, 나는 팥빙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해 보다는 관용적이고 좋아해 보다는 무심한 편이랄까. 황당할 정도로 쾌청한 가을 어느 날, 길거리에 즐비한 카페 아무 곳으로 들어가 "여기 팥빙수 하나요!" 라고 포부 담아 외치면 나를 '뭐야 저건..' 이라는 표정으로 쳐다보겠지. 그만큼 여름 한 철에만 반짝하고 만날 수 있는 반가운 메뉴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만큼 까다롭고 덥다는 획일된 근거 하나로 황홀한 맛을 기대하기엔 나름 복불복인 메뉴라는 거지. 무튼, 그래서 나는 팥빙수를 그 다 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 다 지. ..

⌳ precipice, 2012.08.02

마음으로 빚었던 공간에서

엄마, 울집두툼이, 나는 각기 다른 이사 날짜를 기억하고 있지만 내멋대로 확정하자면, 2007년 8월 5일에 나는 인천 남구 관교동 언저리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5년이 지나 2012년 7월 29일에 그 자리를 떠났다.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더 이상 이 방에서 이불 휘어감고 잘 수 없겠구나 라고 생각하니 조금, 기분이 이상해지더라. 연약하고 값싼 이동식 가구부터 깨알같은 다이소표 천떼기까지 모두 내 손을 거쳐 다듬어져갔던 자리들이었다. 거실에도, 욕실에도, 옷방에도,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내 방에도, 스리슬쩍 내가 묻어있었다. 한 밤에서 새벽 곁으로 타넘는 시간에 정서와 근육이 몰랑해져 주책맞게 카메라를 들고 내 방 이곳저곳을 기웃기웃. 안녕, 아낌없던 내 공간들 - 퇴근 후 집에 들어와 크게..

⌳ precipice, 2012.07.31